이명박(77) 전 대통령을 태운 구치소 호송 버스는 23일 낮 12시 50분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이 전 대통령은 양팔을 앞뒤로 자연스럽게 저으면서 법정으로 걸어갔다. 왼손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오른손으로 옮겨 들기도 했다. 대기하던 취재진 사이에서 "이상하다"는 말이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의 손목에 포승줄이나 수갑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1년 전인 작년 5월 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의 첫 재판에 나올 때는 수갑을 차고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이 수갑을 차지 않은 이유는 지난달 법무부 관련 지침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형(刑)이 확정되지 않은 구속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도주 우려가 낮을 경우 수갑을 채우지 않을 수 있도록 지침을 개정했다. 바뀐 지침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여성, 중증장애인, 중증환자 등은 법원 출석 시 구치소장의 판단에 따라 수갑을 차지 않아도 된다. 이 전 대통령은 65세 이상 고령이고 도주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바뀐 지침이 적용됐다고 한다. 일각에선 특혜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법무부 관계자는 "언론에 나오지 않았을 뿐 앞서 지난 한 달간 70여 명의 피의자가 수갑을 차지 않고 재판을 받았다"고 했다.
법무부는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구속 피의자의 외부 호송 시 수갑이나 포승줄이 노출되는 건 인격권 침해"라는 권고를 꾸준히 받아왔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취임 직후부터 관련 지침을 바꾸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새 지침은 지난달부터 시행됐다. 현재 재판을 거부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도 향후 법정에 나오게 되면 수갑이나 포승줄을 착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침 개정과 관련해 법조계에선 "피의자 인권 보호 측면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는 평가가 많다. 법무부 등에 따르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일괄적으로 수갑이나 포승줄을 착용한 모습을 대중에 노출시키지 않는다.
유엔은 '유엔 피(被)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 규칙'을 제정해 각국 정부에 "형이 확정되지 않은 구속 피의자에 대한 인권 보호에 각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미국·독일·일본은 이 권고를 받아들여 수갑을 찬 피의자를 언론에 거의 노출시키지 않는다.
일각에선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장 판단에 따라 수갑 착용 여부를 정하게 하면 '고무줄 기준'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경증 장애인이나 환자 역시 도주 우려는 높지 않은데 수갑을 꼭 채워야 하느냐는 불만 등이 생길 수 있다. 법무부는 "노인·여성·장애인·환자라는 예시 범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현장 판단에 따라 수갑을 착용하지 않게 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