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따뜻하게 맞이해준 당신과 당신의 '맛있는 아내(delicious wife)'에게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 호주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마치면서 맬컴 턴불 호주 총리에게 영어로 건넨 말이다. 자신이 방문한 나라의 퍼스트레이디를 '맛있다'고 한 것이다.
마크롱은 왜 이런 실수를 한 걸까? 그는 16세 고등학생 때 24세 연상인 자신의 문학 선생님과 시(詩)를 읽다 서로 사랑에 빠지고 소설도 썼을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깊다. 언어의 민감성·어휘 선택의 중요성을 잘 안다. 그런 그가 말짱한 정신으로 공식 석상에서 외교적 결례가 되는 표현을 쓴 것이다.
언어 전문가들은 "마크롱이 '딜리셔스(delicious)'와 발음이 비슷한 프랑스어 '델리시외(delicieux)'를 헷갈렸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델리시외'는 영어의 '딜리셔스'와 같은 '맛있는'이란 뜻이지만, '사랑스러운' '유쾌한'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마크롱이 단어의 형태나 발음은 거의 같지만 뜻은 차이 나는 '가짜 동족어(同族語)'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다.
가짜 동족어 사례는 많다. 스페인어 'exito'는 성공이란 뜻이지만 영어 'exit'은 출구, 비상구다. 라틴어 'praeseruatiuum'은 유럽 여러 언어권에 퍼져 변형됐는데 영어(preservative)로는 '방부제'라는 뜻이 됐고, 프랑스어(Préservatif)·독일어(Präservativ)·스페인어(preservativo)로는 '콘돔'이 됐다. 프랑스 상점에서 방부제를 달라고 하면 콘돔을 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남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 문화를 비교적 잘 아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2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한 말은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데 '오징어'와 '낙지'는 남북한이 정반대"라고 했다. 아무리 한민족이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수십년간 살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가짜 동족어'로 인한 혼선(混線)이 핵 협상에서는 벌어져선 안 될 것이다. 과거 여러 차례 외교적 기만(欺瞞) 전술을 보여온 북한은 이번에도 모호한 용어와 표현으로 '가짜 동족어'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협상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남한의 비핵화는 개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핵 시설을 섬유 공장 단지로 위장해 주위 아랍 적국은 물론 우방인 미국마저 감쪽같이 속이며 '핵보유국'이 됐다. 하물며 미국을 주적(主敵)으로 여기는 북한은 어떨까? 부푼 마음 대신 냉정하게 북핵 협상에 임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