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최초 컨템포러리 아트 전문 미술관
엘리베이터 안은 연두색, 화장실은 꽃무늬… 반전 매력

뉴 뮤지엄 전경

소호의 프라다 매장을 지나서 조금 걸으면 직사각형 박스를 랜덤하게 쌓아놓은 듯한 미술관이 보인다. 멀리서도 외관이 독특해 한눈에 찾기 쉽다. 프리츠커 가문이 설립한 하얏트 재단에서 인류와 환경에 공헌한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 세지마 카즈요와 니시자와 류에의 SANAA가 디자인했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기하학적 박스 형태로만 비스듬히 쌓아 올린 미술관 건물은 자신을 현대미술관이라고 나타내주는 듯하다. 외벽에 설치된 붉은 장미 조형물은 독일작가 이자 겐즈켄 작품이다.

뉴 뮤지엄 로비

로비에 들어서니 오른편의 선물 가게와 왼편의 창구가 사람을 편안하게 맞아 주었다. 선물 숍을 단순한 박스형 칸막이로만 구역을 나눈 아이디어에서 일본 건축가다운 면모를 읽을 수 있었다. 로비 왼편에 걸린 커다랗고 새까만 포스터 속에 유난히도 새빨간 입술의 여인과 빨간 사과가 환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포스터 속의 공간은 실제 공간처럼 느껴져 좁은 공간의 확장을 유도했다. 빨간 입술의 모델과 빨간 사과가 담긴 포스터는 스틸 재질의 회색빛 천정과 조화를 이뤄냈고, 그 장소는 그야말로 허와 실이 어우러진 최상의 공간이었다.

프레임 컷을 통해 보이는 1층 카페의 독특한 샹들리에도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미술관 내부 곳곳을 훑어보았다. 전시장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새까만 포스터에 가려진 엘리베이터 문은 구획의 분간이 쉽지 않았다. 까만 엘리베이터를 열고 들어가니 반전이었다. 연두색의 화려한 컬러가 신선하게 반겨주었다.

연두색의 엘리베이터 내부

지하와 지상 4층의 전시장은 유연한 공간 구조를 취해 어떠한 형식의 전시도 수용 가능하게 디자인됐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도, 복도도 반전의 연속이었다. 복도를 장식하고 있는 독특한 사진을 담은 벽지는 커다란 벽화와 같았다. 화장실 역시 세면대와 거울을 뺀 모든 공간은 문짝과 천장 할 것 없이 온통 꽃무늬를 발라놓았다. 화장실 분위기와 지하 복도는 일본 디자이너만이 지닌 독특한 개성을 엿볼 수 있었다.

뉴 뮤지엄은 뉴욕 최초의 컨템퍼러리 전문 미술관으로 1977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최전방에서 동시대에 일어나는 미술계를 빠르게 읽으며 뉴욕시의 문화적 성장에 앞장서왔다. 디지털 아카이브, 공공 프로그램 및 간행물 등의 자료는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사용자는 4000여 명의 예술가와 큐레이터, 미술관의 프로그램과 관련된 단체를 검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약 7500개 시각 기록을 탐색할 수 있다. 이렇게 콘텐츠를 대중에게 전면적으로 개방한 것은 뉴 뮤지엄이 개관 30주년을 맞아 2007년 맨해튼의 도심에서 소호로 옮겨오면서다. 최대의 자료를 갖춘, 최초의 컨템퍼러리 미술관인 셈이다.

뉴 뮤지엄 로비에 걸린 벽 장식의 포스터

유머러스한 캐릭터의 인물 초상으로 독자적인 장르를 개척한 조지 콘도(George Condo, 1957~)의 특별전을 둘러본 후 올라갔던 옥상 정원의 조그마한 카페에서 내려다본 소호 거리는 정겨웠다. 요즘 어딜 가나 대형 미술관에 질린 터라 좁은 공간은 오히려 안락함으로 피곤을 덜어주었다. 어슴푸레한 저녁 시간에 뉴 뮤지엄을 나오니, 뉴욕의 옛 정취와 새로움이 어우러진 소호 거리는 노을에 물들어 분위기가 한층 고조됐다. 미술관 주변에 드문드문 들어선 갤러리와 디자인 가게를 기웃거리는 재미 역시 소호다웠다.

◆ ‘미술품보다 미술관을 더 좋아하는’ 사진작가 고영애. 그는 오랫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촬영하고 글을 써왔다.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은 작가 고영애가 15년간 지구 한 바퀴를 돌 듯 북미에서 남미로,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그리고 아시아로 옮겨가면서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찾은 매혹적인 현대미술관 60곳을 기록한 미술관 기행서다. 옛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만든 테이트 모던부터 12개의 돛을 형상화한 최첨단 건축물인 루이비통 파운데이션까지, 책에 게재된 60곳 모두 건축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장소지만, 그중 하이라이트 20곳을 엄선해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