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다음 달 선거에 나서는 여성 정치인 A씨의 이름을 입력하자 'A씨, B 사장과 무슨 관계' '두 사람 알고 보니…' 같은 제목의 3~5분짜리 동영상 10여 건이 올라왔다. 사진·음성·자막을 섞은 동영상은 대부분 20만~30만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댓글에는 '침대는 어땠나' 등 성적(性的)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동영상 내용은 제목과는 상관없이 전(前) 정부 시절 A 후보 행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누군가 선거에서 타격을 주기 위해 자극적인 '허위' 게시물을 만들어 올린 것이었다.

네이버에서만 여론 조작이 횡행하는 것이 아니다. 유튜브는 자극적이고 전혀 확인되지 않은 영상물이 넘쳐나고 있다. 이들은 기존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뉴스의 이면(裏面)을 보여준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낚시성 제목을 붙인 비방 게시물을 마구 올려놓고 있다. 심지어 이런 비방 게시물에 유튜브는 광고까지 붙여준다. 특히 유튜브 영상은 방송이 아닌 '인터넷 서비스'로 분류되기 때문에 정부의 내용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각(死角)지대에 놓여 있다. 게다가 구글 서버(대형컴퓨터)는 해외에 있어 국내 사법권이 미치지도 않는다.

유튜브, 고삐 풀린 가짜 뉴스 횡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는 최근 유튜브 단골손님으로 부상했다. 선거전이 뜨거워지면서 '성남시청 퇴임식 개판!'(조회 수 33만회) '이재명의 실체'(24만회) 등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영상들이 집중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 남경필 경기지사의 경우 '비서 임신' 등 자극적 제목을 붙인 동영상이 검색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그런 루머가 있다'는 식이다. 등록 절차도 없고 실체도 불분명한 '1인 미디어'가 만든 가짜 뉴스에 유명 정치인들이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의원 보좌관은 "유튜브에 올라오는 내용을 일일이 챙길 여력도 없는 데다 점점 많은 사람이 보고 있어 곤혹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와이즈앱 등 데이터 분석 업체에 따르면 유튜브의 국내 월 순방문자는 2302만명으로 네이버의 동영상 서비스인 네이버 TV(374만)는 따라갈 수 없다. 유튜브의 월평균 이용 시간 역시 257억분으로 카카오톡(179억분)과 네이버(126억분)를 훨씬 앞질렀다. 1995년 이후 출생한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경우 하루 평균 57분 유튜브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념 대립은 점점 격화되고 있다. '민주역사기록소'란 채널은 '박근혜 감옥서 어떤 검사 받나' 등 여성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저급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의 영상으로 조회 수를 높이고 있다. 최근 우파 채널도 많아졌지만 구독자 수에서 좌파 성향 채널에 훨씬 못 미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방 게시물에도 유튜브에서 광고를 붙인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여자관계'라는 키워드를 넣은 게시물만 수십 건에 달하고, 광고가 붙어 있는 게시물도 상당수다. 한 50대 유튜버(유튜브용 콘텐츠 제작자)는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인, 연예인 이름과 자극적 제목만 붙이면 조회 수 수십만 건은 쉽게 올리고, 광고가 붙으면 한 달에 몇백만원은 번다"고 했다.

"한번 올라가면 지우기도 힘들어"

유튜브는 일단 영상이 올라가면 쉽게 지울 수도 없다. 지난 1월 우리은행은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30억 대북 송금 통로'란 가짜 뉴스가 퍼져 큰 곤욕을 치렀다. 최근에도 "대북 송금 때문에 우리은행이 뉴욕에서 10조원 반환 소송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게시물이 버젓이 올라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구글에 계속 신고를 하지만 동영상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새 영상이 올라온다"고 했다. 방송통신심의위 관계자는 "구글은 서버가 해외에 있어 삭제 조치를 못 하고 국내 통신 업체들에 접속 제한을 요청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만약 '드루킹' 사건이 구글에서 벌어졌다면 수사도 제대로 못 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유튜브의 경우 AI(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비슷한 성향의 동영상을 묶어서 추천하기 때문에 한번 보면 계속 비슷한 성향의 영상만 보게 된다. 예컨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모욕 영상으로 유명한 '서울의 소리' 영상을 봤다면 그다음으로 친(親)민주당 성향의 동영상이 이어서 올라와 전체 여론이 그렇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진지한 논의를 추구하는 뉴스가 편향되고 심지어 돈벌이용으로 만들어지는 가짜 뉴스에 밀리면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