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m 앞에 '조현병' 치료시설?
'방배초 사건' 범인도 조현병…학부모들 불안
보건소 "성도착증·마약 중독자 위한 시설 아냐"
수원시 소통 부족 지적도

"차라리! 매산 초등학교를 폐교하라!"
"아이들을 성(性)도착증 환자들로부터 지켜야 한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산초등학교 주변 상점에는 이런 내용의 전단이 곳곳에 붙어 있다. 매산초 교문에서 부근에 시립(市立) 마음건강치유센터(통합정신건강센터)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내용이다. 현재도 이 학교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정신질환자·알코올중독자들이 치료받는 시설이 있다. 그런데 시설이 통합·증축되면 거리가 5m로 확 당겨지게 된다.

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매산초등학교 정문에서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 하교하고 있다.

◇"방배초 인질 사건도 정신질환자가 범인" 학부모 반발
지난 9일 찾은 매산초 교문 앞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오후 2시, 한낮인데도 교문 앞은 자녀를 기다리는 학부모들로 북적였다. 벤치에 무리 지어 앉아 있는 엄마들도 보였다. "주변 환경이 불안해서 아이와 같이 집에 가려고요." 아이들이 학교 주변 정신건강센터에서 치료받는 환자들과 마주칠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다.

학부모 이애랑(33)씨는 매산초에 두 딸이 다니고 있다. 통합 정신건강센터 부지가 학교 5m 앞까지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뒀다. 불안감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가 학교에 가려면 ‘그곳’을 반드시 거쳐 지나야 합니다. 등하굣길에서 환자들과 마주친 딸이 겁에 질려 벌벌 떨어요.”

당초 수원시는 300여억원을 들여 매산초 부근에 연면적 1만 316㎡(3120평), 지하 3층 지상 8층 규모의 통합 정신건강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이 확장 계획 부지에 매산초와 도로 하나를 사이(5m)에 둔 곳이 포함됐다. 수원시 관계자는 “기존에는 정신건강센터가 여섯 군데로 쪼개져 있었는데 하나로 통합되면 효율적일 것”이라면서 “건물도 지은 지 50년이 넘어 증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합 정신건강센터 증축은 부지 매입 단계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학부모와 주변 상인들은 “왜 꼭 초등학교 앞이어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센터가 들어서기로 한 부지 주변 400m이내에는 매산초와 세류초, 병설유치원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학부모 이경선(45)씨는 “왜 하필 교육시설이 많은 이 근처인지 모르겠다”며 “새로 들어서는 시설을 이용하는 정신 질환자가 모두 우범자는 아니겠지만 아이 가진 부모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배초 인질사건’ 범인 양모(25)씨. 그는 조현병 등 각종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불안에는 이유가 있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어른들이 교내에 난입,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방배초 인질 사건' 범인 양모(25)씨도 정신질환자였다. 조현병(調絃病·정신분열증)증세를 가진 그는 '학교로 들어가서 학생을 잡아 세상과 투쟁하라. 스스로 무장하라'는 환청을 듣고 교내로 난입, 인질극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통합 정신건강센터 증축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진 것도 지난달 ‘방배초 인질 사건’ 이후부터다. 매산초 학부모 배모(39)씨는 “방배초 인질극이 벌어진 다음 날 노숙인이 매산초 교내로 침입해서 추행을 저지른 일도있었다”고 전했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수원시 '소통 부족' 지적도
매산초 주변에는 1996년부터 성인정신건강복지센터와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이미 조현병,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나 알코올 중독자들이 학교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치료받고 있는 것이다. 새로 증축되는 시설에는 일반인을 위한 정신상담, 자살 예방, 노인 및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운영될 예정이다.

팔달구 보건소 관계자는 “학교 부근에 새로 들어설 시설에서는 ‘일반 환자’들이 이용하는 시설이 들어선다”며 “소문대로 성도착증이나 마약 중독자들이 이용하는 센터가 아니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 매산초등학교 인근 상점에 걸려있는 통합중독관리센터 설립 반대 현수막(위)과 주민들이 배포한 전단지(아래).

그럼에도 수원시의 소통 부족이 갈등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부모·주민들과의 충분한 논의 절차를 건너 뛰고 일방적으로 건립만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김소용 매산초 학부모 회장은 "올해 들어서면서 갑자기 (통합 정신건강센터를 짓겠다는) 공문이 왔다"고 말했다.
이에 수원시 측은 "통합 정신건강센터 설립을 촉구하는 서명 캠페인을 벌여 3만 2278명의 지지 서명을 받아놓은 상태"며 "대상 지역 주민 상대 공청회는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수원시는 오는 14일 ‘중독관리시설 반대의견 주민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