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장진리 기자] 한국 패션계에 모처럼 주목할 만한 대형 신예가 나타났다. 모델 나재영이 그 주인공. 나른한 느낌을 주는 마스크와 한 번 봐도 뇌리에 남을 만한 중단발의 헤어스타일까지, 현재 세계가 주목하는 ‘패션 천재’다.
첫 해외 진출에 아시아 모델로는 최초로 지방시 오뜨꾸뛰르 런웨이에 섰고, 런던·밀란·파리 패션위크에서는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컬렉션의 메인 오프닝 모델로 섰고, 데뷔 약 1년 만에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메종 마르지엘라 (Maison Margiela), 겐조(Kenzo)등 세계적인 브랜드 런웨이에 오르며 세계 패션계의 혜성으로 집중조명 받고 있다.
나재영은 차가울 것 같은 인상과 달리 조근조근한 말솜씨의 소유자였다. “옷을 잘 입는 친구에게 물어서 패션의 세계를 알게 됐다”는 모델 나재영의 시작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잡지에서 길거리에서 포착한 일반인들의 패션 사진을 찾아보던 나재영은 “자연스럽게 모델들을 찾아보게 됐고, 외국 모델들의 런웨이 사진도 보게 됐다. 이후 모델들의 사진을 방 벽에 엄청나게 붙여놨다”고 회상했다.
모델이 된 것도 미술이 시작이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나재영은 이후 의상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운명처럼 모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본격 데뷔 전부터 런웨이의 러브콜을 받으며 화려한 신예 모델의 탄생을 알렸다. 데뷔 당시에 대해 나재영은 “지금과 그때의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다. 그때의 나재영과 지금의 나재영은 멘탈 자체가 다른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나재영의 설명처럼 데뷔 당시의 나재영과, 활동 2년차 모델이 된 나재영은 그야말로 다른 사람처럼 달라졌다. 데뷔 때도 유니크한 모델이었던 나재영은 살을 빼고, 머리카락을 기르면서 유일무이한 마스크를 가진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다른 모델과의 차별화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했다는 나재영은 “릭 오웬 같은 브랜드의 경우 장발로 머리카락을 길러서 이마까지 보인다. 그런데 저는 앞머리까지 잘라서 남자냐 여자냐 기로에 서 있는 그런 매력을 보이려고 노력했다”며 “사진을 찍을 때 표정 자체도 남성적이지도 않고, 여성적이지도 않다. 다른 아시안 모델들이 하지 않았던 걸 해야 한 번이라도 눈에 띈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와야 뭐든지 할 수 있는 거니까 기회를 늘리고 싶었다”고 외형 변화를 통한 이미지 변신 이유를 밝혔다.
영리했던 나재영의 변신은 적중했다. 나재영은 모델 2년차, 해외 첫 진출에 세계적인 브랜드 지방시 오뜨꾸뛰르 런웨이 모델을 꿰찼고, 아크네 스튜디오에서는 모든 모델들이 선망하는 오프닝을 장식했다.
“지방시 런웨이에 서게 됐을 때 정말 기뻤어요. 최종 발표가 나는데 남자 모델을 3명만 쓴다는 거예요. 정말 많은 모델 중에서 백인 모델 1명, 아시안 1명, 흑인 모델, 이렇게 남자 3명만 쓰는데, 아시안 모델이 저라는 걸 당일에 알았어요. 저만 지방시 런웨이에 서게 됐다고 하니까 제 에이전시도 ‘왜?’라고 물어볼 정도였어요(웃음). 탑 랭커 안에 있는 모델들이 꽤 많은 에이전시인데 그 친구들을 다 제치고 제가 됐다고 하니까 전부다 신기해했죠. 아크네 스튜디오도 아시안 모델로 오프닝을 장식한 건 제가 처음이었대요. 아크네 스튜디오는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큰 브랜드라 너무 감사했죠. 나중에 공식 SNS에 모델 9명 정도의 사진을 추려서 올렸는데, 거기도 제 사진이 올라갔더라고요. 정말 영광이었어요.”
나재영은 정확한 목표를 뒀고, 해외 시장의 정확한 수요를 파악해 자신의 위치를 ‘타깃팅’했다는 점에서 승부사라 할 수 있다. 나재영은 “중성적인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싶었다”는 생각으로 젠더리스 모델(genderless model)로 승부를 던졌고, 나재영의 승부수는 제대로 통했다.
이제 나재영은 해외 진출 모델로 두 번째 시즌을 준비 중이다. 아시안 남자 모델로는 최초로 지방시 오뜨꾸뛰르 런웨이 진출이라는 값진 성적을 거둔 해외 진출 첫 해에 이어, 두 번째 시즌은 본격적으로 나재영의 진가를 확인시킬 해다. 오히려 첫 번째 해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는 시기일 수 있다.
화려한 출발만큼 두 번째 시작이 더욱 걱정된다는 나재영은 “0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두 번째 시즌이라 여전히 저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다. 기대는 내려놓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다”면서도 “예전에는 해외 런웨이 사진을 보고 방 벽에 붙였었는데, 이제는 제가 그 런웨이를 걷고 있다. 희열을 느낀다”고 밝혔다.
과연 세계가 주목하는 ‘패션 천재’는 해외 진출 두 번째 시즌, 어떤 놀라움을 우리에게 선사할까. 나재영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mari@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