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특집-사각지대 지방의회]⑥
“지방의원? 국회의원의 똘마니, 심복, 부하, 말 잘 듣는 X개다.”
지난 1991년 지방자치 부활과 함께 정치를 시작해 호남지역 광역도 의회에서 다선 의원을 지낸 60대 김모씨는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김씨는 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은 새벽 1시에 전화를 해도 달려나오는 사람에게 공천을 준다”며 “자연히 지방의원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24시간 대기조가 된다”고 했다. 김 씨는 지난 2010년을 끝으로 지방의원 생활을 접었다.
김 씨는 1990년 초반 고향에서 사업을 하던 40대 초반의 평범한 사업가였다. 인물난에 시달리던 당(黨)에서 지역일꾼으로 김 씨를 낙점 했고, 공천을 받아 지방의회에 입성 했다. 정당 공천은 시·군·구 의원(기초의원)의 경우 2006년부터 허용 됐지만 특별시·광역시·도 의원(광역의원)은 지난 1991년부터 가능 했다.
김 씨가 경험한 국회의원의 갑(甲)질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다. ▲국회의원이 지역에서 의정보고를 하거나 서울에서 전당대회를 할 때 경비를 보조하고 사람을 동원하게 하고 ▲회기중인데도 선거운동에 투입하고 ▲지역 민원을 대신 해결하게 하고 ▲광역의회 의장, 부의장에 본인이 원하는 사람이 당선되도록 오더를 내린다.
김 씨는 “지방의원 공천은 완전히 국회의원이 좌지우지 한다고 보면 된다”며 “겉으로 보기엔 경선을 한다는 둥 핑계를 대지만 어떻게든 명분을 갖다 붙여 결과적으로 자기 입맛대로 한다”고 했다.
이런 행태 때문에 지방자치의 본래 뜻이 퇴색되고 있다고 김 씨는 지적했다. 그는 “진짜 지역일꾼을 뽑아야 하는데 어느새 지방의원이 국회의원이 고용한 직장인이 됐다”고 했다.
◇ “지방의원, 지역구 민원 해결부터 행사 돈·사람 동원까지 충성 경쟁”
―지역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은 어떤 관계인가.
“(지방의원은)그 지역 국회의원의 부하다. 국회의원은 한 마디로 ‘군림’하는 존재다. 내 개인 인지도와 무관하게 당의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에 공천을 받아야 당선되는데, 공천권을 국회의원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지방자치가 부활할 때까지만 해도 국회의원이 지역에 내려오면 직접 밥도 사고 사람도 만나고 했는데 지금은 지방의원이 역으로 마중을 나가고, 밥 먹으러 가면 서로 돈을 못 내 눈이 뒤집힌다.”
―구체적인 사례를 얘기해달라.
“국회의원이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의정보고를 한다고 하면 동원령이 떨어진다. 지방의원들이 주변사람을 다 동원해서 사람 숫자를 채운다.
서울에서 전당대회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방의원들이 한 사람당 10~20명씩 동원을 해서 데리고 간다. 경비도 다 댄다. 조그만 함(상자)을 만들어 거기다가 조금씩 돈을 내는 것처럼 하지만 뒤에서 지방의원들이 10만~20만원씩 찬조금을 낸다. 어떤 일반인이 당을 위해 시간, 돈을 투자해서 서울까지 가겠나. 선관위 직원이 나오지만 다 확인할 수 없다. 당에서 야유회를 간다고 해도 지방의원들이 사람을 동원하고, 동원한 사람 만큼 돈을 대신 내준다.
지역구 민원을 지방의원이 대신 해결하는 경우도 허다 하다. 지역에서 ‘도로 포장 좀 해달라’고 민원을 하면, 국회의원이 시의원이나 구의원을 불러 지시한다. 지방의원들은 나중에 공천을 받는 데 문제가 생길까봐 공무원들을 시켜 대신 민원을 해결한다. 그 과정에서 돈이 오가기도 한다.
(시청.군청에)공무원 승진에 대놓고 돈도 오간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시청의 계장은 3000만~5000만원, 과장은 5000만~7000만원, 국장은 7000만~1억원이라는 얘기가 돈다.”
―지방의원들이 공천을 받기 위해 알아서 충성 경쟁을 하나.
“(지방의원들이)다 알아서 긴다. 국회의원이 외국에 간다고 하면 ‘의원님 여비에 보태세요’하고 돈을 갖다 준다. 점수 따야 하니까. 국회의원에게 ‘나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게 중요하다. 선거는 돈 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좀 먹고 살 만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야 한다.”
―국회의원이 자기사람 공천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가능한가.
“이런저런 명분을 갖다붙인다. 선순위에 있는 사람을 공천 할 때는 ‘실적을 위주로 발탁했다’고 하고 후순위에 있는 사람을 공천할 때는 ‘능력을 보고 뽑았다’고 한다. (지역)당원이 1000명이라고 하면, 대부분 시 의원 나오려는 사람들이 10~20명씩 모아온 사람들이다. 겉보기에는 경선을 한다는 둥 핑계를 대지만 국회의원이 자기 입맛대로 할 수 있는 구조다.
지자체장 선거에도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이 작용한다. 이번에 호남지역 A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최종 후보가 된 사람을 보고 열에 아홉은 돈을 먹었다고 한다. 자기 실력으로 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 사람이 될 확률은 그거(돈) 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경선에서 떨어진 사람이 ‘벌써 (당에서)오더(지시)가 내려갔어요’ 하더라. (당에서)그 사람을 지지하라고 지시가 내려갔다는 것이다.
B시장 후보 경선 때도 당에서 정한 시민 여론조사 표본 수보다 훨씬 많은 표본 수로 조사를 진행 했다. 특정후보가 이길 때까지 조사를 한 것이다. 법(당규)이라는 걸 자기들 마음대로 쓴다. 공정성이 없다.법 위에 군림한다.
사립학교에서 남편이 교장이 되려면 부인은 그 집 이사장네 식모보다도 더하다고 한다. 지방의회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은 왜 자기한테 충성하는 사람을 지자체장이나 지방의회에 앉히려고 하나.
“중앙에서 일하는 국회의원이 지역에서 뭘 하겠나. 시장이나 지방의원이 다 도와줘야 된다. 예를 들어 이 사람을 진급시켜라, 혹은 이 사람이 사업을 하는데 좀 밀어줘라, 이런 민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으면 안 시킨다. 기회도 안준다.
국회의원이 누구한테 공천을 줄까. 첫째, 자기 말을 잘 듣는 사람. 둘째, 필요한 걸 눈치 빠르게 조달해올 사람. 오라고 하면 두 말 없이 정신 없이 올 사람. 국회의원이 새벽 1시에 전화해도 달려 나오는 사람. 자기 말을 잘 들을 사람을 선택하는 거다.
총선 때 자기한테 충성할 사람을 찾는 거다. 어떤 사람이 돈을 갖다주고, 어떤 사람이 말을 잘 듣고 그럴지를 본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나면 다시 2년 후에 지방선거를 치르기 전에 충성도를 봐서 싹 물갈이를 한다. 자기 사람으로 갈아치운다.”
―지방의원들은 왜 공천을 받기위해 그런 생활을 감수하나.
"예전에는 (지방의원들이 받는 돈이)회의수당 외에는 없었다. 월급이란 게 없었다. 그런데 의정활동비를 주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직장이 됐다. 도의원은 연봉이 5000만원이 넘는다. 시의원은 3700~3800만원인데 안 보이는 힘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건축 인·허가 관련해 의원이 권한을 갖고 있으니 민원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돈이 오간다. 시청, 도청 직원들한테 큰 소리를 칠 수도 있다.”
―특정 정당 지지율이 높으면, 예비후보들 간 공천을 받으려는 경쟁이 치열하겠다.
“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으니 국회의원 의중을 살짝 떠본다. ‘저 이번에 시의원 하고 싶습니다’했는데 의원이 ‘하지말라’고 하면 못 나간다.
지방의회 비례대표 후보는 대의원 투표로 결정되는데 이 대의원은 국회의원이 임명한다. 시의원에 나올 사람들, 조직부장이나 여성부장, 청년부장 이런 사람을 시험이나 경쟁 없이 국회의원이 다 임명한다.
여성 후보의 경우 외모도 좌우한다.이쁘장한 사람이 부탁하면 의무공천이라는 타이틀로 그냥 준다. 그렇게 비례대표를 한번 맛보면 다음에도 무조건 나온다. 시의원 연봉이 3700만원이니까 4년 받으면 1억5000만원이 되지 않나. 여기서 한 5000만원~1억원 떼어줘도… 둘이 주고 받는 걸 누가 밤에 감시할 수도 없고, 결국 사고가 나는 것이다. ”
―국회의원이 지방의회 의장 선거에도 관여하나.
“국회의원이 사실상 내정을 한다. 예를 들어 A라는 도시에는 갑, 을 선거구가 있는데 국회의원이 ‘전반기 의장 2년은 갑 선거구에서 할테니, 후반기 의장은 을 선거구에서 하라’고 지시를 한다. 그러면 지방의원들이 그런 결과가 나오도록 투표를 한다. 한 도시에 지방의원 숫자가 고작 20여명 수준이기 때문에 비밀투표를 해도 누가 누굴 찍었는지 다 안다. 인증샷을 찍은 적도 있다. 사진을 찍어서 내가 이 사람을 찍었다고 인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