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식물원을 찾은 사람들이 난초를 감상하고 있다.

수퍼마켓에서 장 보고 나오는데 누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따라왔다. 겁이 났다. 여기는 뉴욕 아닌가? 뒤돌아서 "당신 누구요?" 물으니 "너 대수 아니야?" 묻는다. 가만히 얼굴을 보니 35년 전 사진 스튜디오 'Color Wheel'에서 같이 일한 동료였다. "토니" "와! 너 정말 늙었다" "너는 더 늙었다"며 얼싸안고 웃었다.

'Color Wheel'은 당시 최고 상업사진 스튜디오였다. 세계 최대, 최고 사진 공장이었다. 규모가 크고 일이 많아 코닥과 후지필름에서 석 달치 필름과 인화지를 따로 제작할 정도였다.

회장님은 터키 재벌 '하루크(Haluk)'였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 사치(Saatchi), 웰스 리치 그린, 모건스탠리, 캘빈클라인, 랄프로렌 등 세계 최고와 거래했다. 스튜디오 직원들은 점심을 제대로 앉아서 먹은 적이 없을뿐더러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 'Rush job'하면 두 시간 내내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인화해서 10명이나 되는 배달원들이 매디슨가에 있는 광고 대리점으로 배달했다.

추억을 되새기니 끔찍하다. 그 무거운 8×10인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크게 출력하는 1t짜리 확대기 바퀴를 하루에 수천 번 돌렸으니 아직도 팔이 아프다. 그것도 캄캄한 암실에서. "토니야, 우리 그때 일 죽어라 했다" 하니까 "수표가 너무 쌓이니까 회사에서 빨리 입금하라고 야단칠 정도였어"라고 맞장구쳤다. 같이 낄낄 웃었다.

전화번호를 나누고 집에 오니 토니한테 전화가 왔다. "대수, 안 그래도 내일 다른 동료 '필'하고 브롱크스에 있는 식물원 가는데 같이 갈래? 죽여주는 'Orchid(난초) Show'야."

1958년에 할아버지와 같이 갔으니 약 60년 만에 식물원에 갔다. 감개무량하다. 뉴욕식물원(NYBG)은 세계 최대 규모다. 약 82만㎡ 크기에 100만 종 넘는 식물, 1년에 100만명 이상 방문한다. 매년 4월 'Orchid Show'는 매진될 정도로 인기다.

이번 쇼는 '꽃 예술계의 피카소'라 불리는 벨기에 출신 플라워 아티스트 다니엘 오스트가 디자인했다. 이번 쇼는 약 1만개 꽃이 전시됐다. NYBG에서 16년째 후원하고 있다. 세계 난초 애호가들이 구름같이 모인다. 난초는 공룡이 지구를 걸어 다니던 1억2000만년 전에도 생존했고 전 세계 약 3만5000종이 있다고 한다. 꽃을 감상하고 나오니 내 마음도 꽃으로 변했다. 여러분, 다음에 뉴욕 오시면 센트럴파크도 좋지만 NYBG를 꼭 방문하세요. 푸른 초원 위로 우뚝 서 있는 100년 넘는 나무들은 더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토니야, 고맙다!

"Flowers cannot blossom without sunshine. Men cannot live without love(꽃은 햇살 없이 필 수 없고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독일 철학자 막스 뮐러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