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서비스는 복잡하고 비싼 데다 불편하다. 살면서 법이 필요한 경우는 많지만 이 때문에 로펌이나 법률 업체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 이런 흐름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사건이 없어도 로펌에 찾아가고, 클릭 몇 번으로 변호사 상담을 하기도 한다. 의뢰인 입장에서 눈이 가는 법률 서비스를 내놓은 두 사람을 만났다.

당신의 마지막 심장소리도 녹음하겠습니다
삶의 마침표에 법이 필요해요

최의원에서 최변으로… '상속설계 '나선 최재천

최재천 변호사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상속 설계’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상속 설계의 중심엔 가치와 명예, 정신이 놓여야 한다”고 했다.

두 번의 국회의원 당선과 한 번의 낙선,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여의도를 떠났던 최재천(55) 전 의원이 변호사로 돌아왔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 다독가로도 유명한 그는 2004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17대 총선에 당선되기 전까지 의료 소송 분야의 스타 변호사였다. 1999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담배 회사를 상대해 소송을 낸 것도 그였다. 이번에 들고 나온 화두는 죽음을 바라보며 삶을 정리하는 일, '상속 설계'다.

―상속과 설계의 조합이 낯설다. 상속은 증여나 절세의 문제로만 이해됐다.

"상속이 재산 상속만을 의미한다면 인생이 공허하다. 재산 상속의 핵심이 절세라면 이 또한 허전하다. 물려줄 것은 재산뿐이 아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았고 세상과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는 이가 많다. 많은 사람이 가치나 가문의 역사, 교훈, 삶의 자세 등을 정리하고 체계화하고 싶어한다. 이런 작업을 도와주는 것이 상속 설계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돕나.

"기존 로펌이 해왔던 유언장 작성이나 공증뿐 아니라 조세·금융 전문가 등과 손을 잡고 절세나 증여, 자산 설계를 담당한다. 병원·상조업체와 함께 호스피스, 존엄사 등 의료·장례 절차도 돕는다. 가족관계부 정리나 회고록 집필, 저작권, 상표권, 특허권 관리 계획도 짠다. 후손에게 남기고 싶은 가치를 정리하는 일이면서 나의 자아와 삶의 본질을 정리하는 것이다. 로펌이 이런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유언장도 작성하려고 하지 않는 게 현실 아닌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때그때 정리하고 정확하게 메시지를 후손에 남기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유언장은 백번 천번, 끊임없이 바꿔 써도 된다. 유언장은 내 삶에 대한 정리이기도 하다. 삭제할 것은 삭제하고 남기고 싶은 것은 백업 파일로 정리해 유족에게 남기는 디지털 장례식도 유언이 없으면 힘들다."

―로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사회는 이미 사후 중심 대응에서 '선제 예방'으로, 핵심 업무 강화 후 비핵심 업무는 아웃소싱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플랫폼 업체들이 주도권을 쥔 세상이다. 이를 법률 시장으로 옮겨온 것뿐이다. 우버는 택시업을 하지만 자체 등록된 차량은 거의 없다.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이고 알리바바도 재고가 없는 기업이다. 플랫폼 역할만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작고 강한 나라는 이런 업체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세계의 관문, 통로가 될 수 있다. 로펌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서초동에서 안주하던 시대는 끝났다."

―해외에서도 이런 시장 흐름이 전개되나.

"미국은 상속설계가 재무설계만큼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로펌이 있고 학회나 서적도 많다. 일본에도 '슈카쓰(しゅうかつ, 終活)'라는 개념이 있다. 생전 장례식을 치르고 감사한 사람들과 작별 의식을 갖는다. 내가 묻힐 장소를 답사하고 인터넷 비밀번호 등 디지털 유품을 전문적으로 처리한다. 애완견을 신탁하는 문제를 맡고, 고인의 마지막 심장 박동을 녹음해 제공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로펌이 나서 의료·세무 분야와 협력해 죽음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언제 구체화했나.

"10여년쯤 전 책을 읽다가 외국엔 상속설계라는 개념이 보편화돼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국회의원 하면서 12년 동안 법조계를 떠나 있었다. 되돌아와서 해야 할 변호사로서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다 보니 상속설계가 첫째였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느 변호사도 이걸 손대고 있지 않았다. 한국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

―'변호사 경력 단절'이 반복될 가능성은 없나.

"촌놈이라 내가 번 돈 다 쓰고 정치했다. 가장으로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할 때다. 당에서 직책을 맡았을 때는 새벽에도 잠이 안 왔다. 지금은 그런 일도 없고 편안하다."

내 소송에 딱맞는 변호사 AI로 공짜 중매합니다
변호사 고르는 것도 과학입니다

법률과 IT를 하나로… '로톡' 의 정재성

로톡은 학습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의뢰인에 맞는 변호사를 추천한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로톡 사무실에서 정재성 부대표가 이용자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사(訟事)에 휘말리면 먼저 찾는 것이 변호사다. 그런데 어디서 누구를 찾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길거리에서 수많은 변호사 간판을 보고도 덜컥 상담료라도 내라고 할까 싶어 엄두를 못 낸다. 빅데이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지인을 통해 '잘한다'는 말 한마디 듣고 사건을 맡기는 게 현실이다. 변호사가 과거 어떤 사건을 다루고 결과는 어땠는지, 다른 의뢰인은 이 변호사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수임료는 얼마인지를 인터넷으로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면 어떨까. 법률 플랫폼 기업 '로톡(www.lawtalk.co.kr )'은 이런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업을 이끄는 정재성(35) 부대표는 로톡을 '법률 포털 서비스'라고 정의했다.

―의뢰인들에게 제일 어려운 건 변호사 선임이다.

"로톡에 들어와 상담 글을 올리면 변호사가 직접 확인한 뒤 답변을 단다. 의뢰인은 변호사의 주요 분야나 경력, 상담했던 사례, 수임료 등을 확인한 후 변호사를 고를 수 있다. 이런 요소를 고려해 내게 맞는 변호사를 무료로 자동 추천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나에게 맞는 변호사 추천은 어떻게 이뤄지나.

"로톡은 구글의 딥러닝(심층 학습)과 같이 계속해 학습하는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다. 변호사들의 상담 사례와 활동 분야를 분석하고 이를 나의 상담 사례와 맞춰 추천한다. 상담 사례 등이 추가될수록 학습의 양도 늘어나기 때문에 더 적확한 추천이 이뤄질 수 있다."

―몇 명이나 이용하고 있나.

"로톡에 가입된 변호사는 1015명, 지난달 방문자 수는 80만명이다. 누적 상담 건수만 11만여건에 달한다. 의뢰인 입장에선 변호사에 대한 정보나 비교가 어려웠는데 이것이 가능해졌고, 변호사들은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알릴 수 있어 윈윈하는 구조다."

―변호사들이 천편일률적 답만 올리며 수임하는 일은 없나.

"법률 상담을 했을 경우 의뢰인이 남긴 평점과 후기, 경력 등이 공개된다. 수임으로 이어지기까지 온라인 상담과 전화, 방문 상담 등 선택지가 넓어 의뢰인이 유리한 구조다. 상담 단계에서 답변이 풍족하지 못하면 수임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로톡은 연세대 로스쿨에 다니던 김본환(36) 대표와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정 부대표가 2012년 함께 창업한 회사다. 이들은 변호사는 늘어나는데 의뢰인이 변호사 정보를 알거나 고르는 데 애를 먹는 시장의 비대칭성에 주목했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장애물을 없애자는 것이다. 수단은 IT 기술이다.

―법률 시장은 IT와 가장 동떨어진 곳 중 하나다.

"IT 기술은 변호사와 의뢰인 간 소통을 도와주며 법률 비용을 낮추고 서비스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반복되는 업무를 표준화하는 등 자동화를 통해 효율을 높이면 자연히 법률 비용은 낮아진다. 의뢰인은 더 쉽게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고 시장 크기도 늘어난다.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파생되는 문제를 해결할 궁극적 답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1000명 이상의 변호사가 등록한 시스템은 아니었다.

"초기엔 실제로 발로 뛰며 변호사와 의뢰인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다. 법조인들도 시장이 변화하고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은 갖고 있었지만 방법론을 몰랐다. 우리가 로톡 서비스를 제시하자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다. 로톡을 돕는 이들도 많다. 종합 법률 포털 로앤비의 수장이었던 안기순(48) 변호사도 이사로 로톡의 경영을 돕고 있다. 아직도 IT 기술이 침투할 곳이 많이 남아 있다."

―법률 서비스의 자동화도 차츰 늘고 있다.

"변호사 없는 나 홀로 소송이 전체 사건의 70%가 넘는다. 소장에 기본 정보와 사건 내용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작성되게끔 하는 서비스를 조만간 내놓을 계획이다. 자동으로 소장이 만들어지면 변호사 입장에선 시간을 절약하고 검토만 하면 된다. 또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