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컵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어제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공개된 음성파일에서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조씨의 목소리를 들으면 대기업의 전무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동영상에서 조씨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은 그룹 공사장에서 여성 직원의 팔을 잡아채고 등을 밀쳤다. 이를 말리던 직원의 서류 뭉치를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 불과 4년 전 조씨의 언니는 이른바 '땅콩 회항(回航)'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감옥에까지 갔다. 그러고도 또 이러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주목할 것은 한진그룹 직원들이 소셜미디어에 '제보방'을 만들어 총수 일가의 갑질 행태를 폭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제 조씨가 조사받은 경찰서 앞에서는 대한항공 직원들이 '황제경영' '갑질경영'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시위했다. 오너 일가의 도 넘은 행위가 얼마나 잦았으면 직원들이 이러겠나.

한진그룹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느 대기업에선 오너 차량 운전기사들이 욕설 등으로 수난을 당하고, 어느 기업 대표는 화만 나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진다고 한다. 창업세대와 달리 3·4세 가운데는 떠받들기만 하는 환경에서 자라 배려할 줄 모르고 오만과 독단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경영자로서의 자질에 앞서 인격적 문제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경영자는 리더십이라는 가장 어려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자리다. 리더십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믿고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재벌가 중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곳은 얼마나 되나. 외신까지 한국 대기업 오너의 갑질에 주목하는 실정이다. 재벌가의 체질, 문화, 기풍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어떤 태풍이 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