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3일 오전 7시 50분쯤 서울 강남의 한 빌라에서 여성 A(당시 27세)씨가 변사체로 발견됐다. 119가 출동했을 때 그의 호흡·맥박은 멎어 있었다. 뺨과 입술, 목에는 찰과상과 멍 자국이 있었다. 경찰은 타살을 의심했다.

경찰은 최초 신고를 한 남성 홍모(34)씨를 용의자로 보고 수사했다. 한때 싱가포르 호스트바에서 일했다는 그는 2015년부터 A씨를 만나왔다고 했다. 그녀가 숨질 때도 옆에 있었다. 홍씨는 "사건 발생 당일 새벽 4시쯤 빌라에 들렀는데 A씨가 수면제 한 알을 먹더니 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는 유흥업소 종업원인데 몇 달 전부터 손님이 음료에 마약을 타서 그에게 준 것 같다. 어제도 마약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실제 A씨 혈액에선 치사량의 필로폰·엑스터시 성분이 검출됐다. 홍씨는 마약을 건넨 '손님'으로 기업 창업주의 3세 이모씨를 지목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A씨와 업소에서 만났지만 두 달 전부터 진지하게 교제했다. 사건 발생 전날 그와 데이트를 하고 밤 12시쯤 헤어졌다"고 했다. 이씨 몸에선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그런데 빌라 폐쇄회로 TV에 다른 장면이 찍혀 있었다. 이씨가 떠난 지 얼마 안 돼 홍씨가 A씨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녹화돼 있었다. 3일 새벽 0시 50분쯤이었다. 사건 발생 당일 새벽 4시쯤 그 빌라에 갔다는 홍씨 진술은 거짓이었다.

경찰이 확보한 A씨 휴대전화에선 홍씨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가 여럿 나왔다. A씨가 '약 하지 말자. 둘 다 (감방에) 들어가자'고 하자, 그는 2일 낮부터 A씨에게 욕설 문자를 퍼부었다. '기업 회장 아드님 가족과 상견례도 하셨다면서요. 나 사고 칠 거 같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홍씨 몸에선 A씨 몸에서 검출된 것과 같은 마약 성분이 나왔다. 이웃 주민들은 "A씨가 숨진 날 새벽 4시 30분부터 방에서 쿵쿵하는 소리와 여자 비명이 들렸다"고 했다.

검찰은 홍씨가 질투심에 A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재판에서 "홍씨가 피해자에게 치사량 이상의 마약을 먹인 뒤 입을 틀어막고 목을 눌렀다"며 징역 20년을 구형(求刑)했다. 홍씨는 "이웃이 깰까 봐 당황해 잠시 눌렀지만 살해 의도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는 4월 27일 홍씨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마약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A씨가 홍씨와 합의하에 마약을 복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검찰은 항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