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26일 본지는 니어재단(이사장 정덕구·사진)과 공동으로 한·미·중·일 4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에게 각국의 전망과 분석을 들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 패트릭 크로닌 미 신안보센터(CNAS) 아·태안보소장, 자칭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 다나카 히토시 전 일본 외무성 심의관이 각국을 대표해 참석했다.

[신각수 前 주일대사] "文대통령,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와 진정성 확인해야"

북한은 지난 19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통해 사실상 '핵전력을 유지하면서 경제 발전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핵 개발이 거의 완성 단계인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역시 '비핵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진정성을 확인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말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 개념이 같은지 묻고 "진정한 핵 폐기만이 북한 정권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고 밝혀야 한다.

다만 기대치를 높게 잡고 남북 회담에서 급하게 비핵화 의제를 밀어붙이면 안 된다. 북한은 남북 회담이 아닌 추후 미·북 회담에서 비핵화 의지를 밝히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북 간 비핵화 논의의 기틀을 닦을 수 있도록 이번 회담에서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관계를 개선시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한·미 간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트럼프 미 대통령보다 북한을 잘 아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비핵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김일성·김정일에 비해 김정은이 더 일관성 있고 실용적이며 대중에 관심이 많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다.

만약 이번 남북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지 못하면 미·북 회담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미 본토 공격 능력을 차단하는 선에서 합의하거나 비핵화 협상 실패 후 군사적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남북 회담 이후에도 모든 가능성을 경계하며 비핵화 전략과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

[크로닌 美 아·태안보소장] "북한의 행동에 따라 보상 하되, 앞서 나가선 안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압박과 문재인 대통령의 관여로 남북, 미·북 대화가 성사됐다. 일단 북한이 군사적 목표를 이룬 뒤 경제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의를 파악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김정은은 시진핑 중국 주석을 보며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은의 의도를 파악하는 '북한 비핵화의 첫걸음'이다. 남북 회담에서 비핵화 모멘텀을 만들어 미·북 회담까지 갖고 가야 한다. 북한이 우리가 만족할 만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할지 모르겠지만, 상상하지 못한 것을 약속하면서 우리를 놀라게 할 수도 있다. 우선 이번 남북 회담 합의문에 김정은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의지가 담기길 바란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미·북 회담 후에 발생할 것이다. 남북, 미·북 회담에서 상징적 '선언'을 하더라도 선언을 실행하기 위한 핵 검증 등 세부 논의가 관건이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최근에 했던 말을 실천하도록 설득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모든 정보를 공유하면서 로드맵을 짜야 한다. CVID를 목표로 명시할 필요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첫 단계는 핵 동결 정도가 될 것이다. 북한의 행동에 따라 보상을 하되 너무 앞서 나가선 안 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에 이어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이 주한 미국 대사로 지명될 것으로 알려졌다. 혹자는 '강경파'라는 이유로 걱정하지만 그들은 북한에 대한 이해도가 깊고 합리적이다.

[자칭궈 베이징대 국제원장] "김정은, 이번 회담으로 美와 어떤 거래할지 가늠할 것"

지금 북한은 비핵화가 아니라 핵 동결에 관해 말하고 있다. 비핵화를 할 것이라는 어떠한 확실한 담보도 없다. 다만 김정은이 어마어마한 압력을 받은 것은 사실 같다. 김정은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과 미국 측 입장을 최대한 파악하려 한다. 이를 통해 향후 미·북 정상회담에서 어떤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지 가늠할 것이다.

김정은은 특히 미·중 관계에 관심이 많다. 미·중 관계 변화에 따라 대화 전략을 바꿀 수 있다. 실제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 북한이 느낀 부담감이 컸다. 김정은이 베이징으로 가 시진핑 주석을 만난 것도 미·중 관계의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트럼프와의 거래에 앞서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중국을 필요로 했다. 북한은 앞으로도 미·중 간에 문제가 생기면 '중국을 설득해 제재를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중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양국 관계를 보면 걱정이 많다. 무역 마찰, 미국의 대만 여행법, 남중국해 갈등도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정은은 비핵화 후 중국식 개혁·개방을 꿈꿀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이행할 경우 '보상 패키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약속해야 한다. 다만 너무 많은 약속을 하면 안 된다. 한반도 주변국들이 남북, 미·북 회담이 성공하기만 바라고 있는데, 북한을 설득할 방법이나 보상 패키지 등에 관해서도 지금부터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다나카 전 日 외무성심의관] "핵 없는 한반도 될 마지막 기회… 압박·국제조율 중요"

북한 핵 개발을 30년간 지켜봤지만 국제사회가 효과적이면서 충분한 '최대 압박'을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이 제재에 동참한 덕분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핵무기 역량을 구축했다고 판단해 협상장으로 나왔다.

이번 남북, 미·북 정상회담은 '핵 없는 한반도'를 달성할 마지막 기회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P+3C'가 중요하다. P는 북한에 가하는 국제사회의 압력(pressure)이다. 세 개의 C는 한반도 주변국 간 '조율(coordination)', 비상 상황에 대한 항시 대비(contingency plan), 북한과의 '소통 채널(communication channel)'이다.

북한은 과거 여러 번 약속을 어겼지만, 이번에는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을 감안해 신중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와 별개로 경제 협력을 약속해선 안 된다. 중국의 대북 제재 협조도 필수적이다. 비핵화 합의가 실패하면 동북아 지역 내에 엄청난 긴장감이 야기될 것이다.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와 김정일 간 북·일 정상회담을 위해 1년간 북한과 협상했다. 수백 번 확인하고 세밀하게 준비했기에 회담 결과물을 예측할 수 있었다. 북한 문제도 향후 여러 변수가 터져나올 텐데 한국은 이번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늘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과거 북한 고위 관료로부터 '북한에서 정치적 지도자가 되려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처럼 이번 남북 회담, 미·북 회담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