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 시장 커지는데, 의류 치수 표준화 못하는 이유는?
남성 40%가 안 맞는 상의 입어… 사람마다 원하는 핏(Fit) 다르다
쇼핑몰, 소비자가 원하는 '감성 치수' 제공해야

프론트로우는 허리둘레와 엉덩이둘레로 구분한 기존의 치수 외에도, 바지 핏과 길이 등을 세분화해 호응을 얻었다.

직장인 이하나 씨는 지난 주말 출근복으로 입을 정장을 사러 인터넷 쇼핑에 나섰다 난관에 부딪혔다. 치수가 모두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재킷은 S, M 또 어떤 것은 55, 66 다른 재킷은 80, 85, 90… 같은 55라도 막상 치수를 비교해보면 크기가 달랐다. 일일이 치수를 비교하던 김 씨는 결국 쇼핑을 포기했다. “방에서 편하게 쇼핑하려고 했더니,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 그냥 속 편하게 매장 가서 입어보고 살래요.”

◇ 치수 제각각, 제품 실측표도 없어… “소비자는 답답해”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 시장규모는 2015년 54조원에서 2017년 78조원으로 증가했다. 인터넷 쇼핑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내 몸에 잘 맞는 옷을 사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의류 업체들이 치수를 각기 다르게 표기하면서 치수가 무의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큼직하게 옷을 입는 오버사이즈 패션이 유행하면서, 아예 프리(Free)사이즈라는 이름으로 한 치수만 내놓는 곳도 생겼다.

의류 업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돌아봤다. L사의 경우 A 브랜드는 S, M, L로, H 브랜드는 85, 90, 95로 치수를 표기했다. 또 B 브랜드는 36, 38이라는 호칭을 썼다. 혼선을 우려해 치수 뒤에 55, 66을 괄호로 표기한 곳도 있었다. 제품의 실측 치수도 표기됐다. 다른 의류업체도 마찬가지. 대부분 브랜드별로 호칭이 제각각인 데다, 어떤 경우엔 제품 실측 치수도 없어 혼란스러웠다. 이유가 무엇일까?

LF 관계자는 “브랜드의 주 소비자와 이미지 등에 맞춰 치수 체계를 설정한다. 프랑스 라이선스 브랜드는 유럽 호칭인 36, 38을, 미국풍 브랜드는 2, 4, 6 호칭을 사용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치수 표준화 문제에 관해선 제품 “실측 치수를 별도로 표기하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밝혔다.

대부분 온라인 쇼핑몰은 다양한 호칭을 비교할 수 있는 사이즈 조견표를 제공한다.

고객들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직장인 한재희 씨는 “제품 실측표도 없이 사이즈 조견표(한눈에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든 표)만 표시해 치수를 제대로 알 수 없어 난감하다”라고 했다. 제품 실측표가 있어도 번거롭긴 마찬가지다. 옷을 살 때마다 일일이 재고 비교하며 살 순 없기 때문이다.

남성 40%가 안 맞는 상의 입어… 옷이 잘 맞는다는 느낌 제각각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여성복에서 주로 쓰는 55, 66 호칭은 1981년 제정된 의류 제품 치수에 따른 것이다. 당시 여성의 평균 키와 가슴둘레였던 155cm, 85cm를 55로 정했고, 여기서 키 5cm, 가슴둘레 3cm를 더하거나 빼는 방식으로 치수를 세분화했다. 하지만 여성들의 체형이 커지면서 이런 방식은 1990년에 폐지됐고, 현재는 ‘KS의류 치수 규격’을 통해 ‘가슴둘레-엉덩이둘레-키’를 나열하는 방식을 권고한다.

하지만 여전히 55, 66 호칭을 쉽게 볼 수 있다. 게다가 수입 브랜드를 판매하는 쇼핑몰에서는 여러 단위의 호칭을 혼재해 사용하기도 한다. 국가기술표준원이 제안한 치수 규정이 권고 수준인 데다, 업계도 치수 표준화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기술표준원과 의류 업계는 감성 비즈니스를 표방하는 패션 업계의 특성상 치수를 통일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른다.

2015년 국내 연구진이 남성 300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신체 치수에 맞는 옷을 입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30대 이하 남성 중 43.9%가 자신의 실제 치수와 다른 상의를, 33.4%가 맞지 않는 하의를 입었다(30대 이상은 자기 사이즈를 안 입는 확률이 상의 37.9%, 하의 50.7%). 이를 조사한 최경미 동서울대학교 교수는 “옷을 입을 때 사람마다 원하는 핏(Fit·옷맵시)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결과”라고 했다. 그는 “옷을 꼭 맞게 입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슨하게 입는 걸 ‘잘 맞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치수를 표준화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핏이 아니라면, 쇼핑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체 치수보다 중요한 건 '감성 치수'

그렇다면 내게 맞는 핏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최 교수는 소비자가 원하는 핏을 정확히 읽어내는 온라인 쇼핑 환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감성 치수’다.

고객 빅데이터를 활용해 원하는 ‘핏’을 추천해주는 자라의 ‘내 사이즈 찾기’ 서비스

스페인 SPA(제조·유통 일괄형 패션) 브랜드 자라의 온라인 쇼핑몰은 ‘내 사이즈 확인하기(What’s My Size)’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키와 체중을 기재하고, 선호하는 핏(타이트하게, 딱 맞게, 헐렁하게)을 선택하면 고객 빅데이터를 활용해 그에 알맞은 치수를 추천해준다. 여기에 복부, 골반 모양, 나이, 속옷 치수 등 체형까지 기입하면 더 세심한 치수 추천이 가능하다.

국내 여성복 쇼핑몰 W컨셉의 자체 브랜드 프론트로우는 세분화된 치수 체계를 개발해 히트했다. 바지의 경우 허리둘레를 기준으로 치수를 7개로 나눈 것 외에도, 길이(30, 32)와 모양새(일자, 부츠컷)에 따라 치수를 추가로 나눴다. 회사 관계자는 “입고 싶은 바지 길이와 모양 등 소비자가 원하는 핏을 선택할 수 있도록 치수를 세분화 해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