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침대 위에 젊은 여인이 흰 드레스를 입은 채 잠들어 있다. 심하게 몸부림을 치며 팔을 비틀고 얼굴을 찡그린 걸 보니 악몽에 시달리나 보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이 온몸을 조여드는 끔찍한 악몽의 실체는 바로 기괴한 털북숭이 괴물과 눈을 희번덕대며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 한 마리 말이다. 스위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화가 헨리 푸셀리(Henry Fuseli·1741~1825)가 1781년에 영국의 왕립 아카데미 전시회에서 발표했던 ‘악몽’이다.

헨리푸셀리‘, 악몽’, 1781년, 캔버스에유채, 101.6 ×127㎝, 디트로이트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소장.

'악몽'이 전시되자 영국 사회는 그야말로 악몽에 시달렸다. 여인의 풍만한 몸매는 지나치게 관능적이고, 가슴 위에 올라앉은 괴물과 붉은 커튼의 틈새를 뚫고 들어오는 말 머리는 지나치게 성적(性的)이었다. 추악한 악마와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하는 은밀하고도 불길한 쾌락의 장면이란 당시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외설이었다. 한 유명 평론가는 "미치고, 미치고, 유사 이래 제일 미친 그림"이라며 광분했고, 다른 평론가들 역시 "당장 없애 버려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대중은 육체적인 욕망과 억눌린 성적 환상을 파격적으로 표출한 이 작품에 대해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푸셀리는 ‘악몽’을 원하는 수집가들을 위해 유사한 유화를 최소 세 점 이상 그렸고, 복제본 판화 역시 대량으로 유통되었다. 그 판화 중의 하나가 바로 100년 후에 ‘꿈의 해석’을 발표한 프로이트의 서재에 걸려 있었다. 프로이트는 꿈이란 현실에서 이룰 수 없으므로 의식적으로 억압하던 욕망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다. 푸셀리의 그림은 이미 100여 년 전에 프로이트의 이론을 예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