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종서 기자] "정말 감사합니다." 데뷔전만 두 번째. 김정후(30·두산)가 많은 사연을 안고 프로 인생 2막을 열었다.
지난 10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8-1로 크게 앞서고 있던 9회말 1사에 두산은 다소 낯선 이름의 투수 한 명을 마운드에 올렸다.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최고 151km의 공을 던지며 남은 아웃카운트를 모두 채웠다. 김정후의 데뷔전이었다.
김정후는 2013년 SK 와이번스에 10라운드(전체 87순위)로 지명돼 프로 6년 차를 맞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이유는 그의 굴곡진 프로 생활 탓이다.
2006년 양현종(KIA), 김광현(SK) 등과 함께 청소년대표팀으로 뛰며 유망주로 평가받던 그는 당시에는 투수가 아닌 포수였다. 이름도 김정후가 아닌 김경근이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교 졸업 후 프로에 지명받지 못했던 그는 상무에 입단했고, 이후에야 SK의 지명을 받을 수 있었다.
청소년대표팀 당시 포수였지만, 입단해서는 외야수로 뛴 김정후는 당시 SK 사령탑이었던 이만수 감독의 기대를 받아 시범경기에서 4번 타자로 나섰다. 그러나 기회를 잡지 못했고, 정규시즌에서 5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 2탈삼진 기록하고 이후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이듬해 스프링캠프에서 수비 도중 왼쪽 어깨를 심하게 다친 그는 1년 간의 재활을 했지만, 끝내 다시 1군에 복귀하지 못하고 결국 프로를 떠나게 됐다.
프로 생활을 끝마친 뒤 김정후는 약 1년 간 야구를 놓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투수 전향' 권유를 받았고, 김정후는 다시 한번 공을 잡았다. 김정후는 "고등학교 시절 투수코치였던 곽채진 감독으로부터 '왼쪽 어깨가 다쳤지만, 오른쪽 어깨는 멀쩡하니 투수로 전향봐라'는 권유를 받았다. 공을 던졌는데 147km가 나와 할 수있겠다는 생각 들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사이 이름도 바꿨다. 그는 "김경근이라는 이름이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고 해서 바꾸게 됐다. 실제 SK에서 시범경기에서 4번 타자도 치고 그랬는데, 부상으로 나오는 등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 같아서 바꾸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뛸 곳이 없자 김정후는 일본으로 넘어가 사회인야구를 했다. 한국보다 더욱 체계적이고 규모가 큰 사회인야구에서 김정후는 9이닝 19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을 거뒀다. 팀은 1-0으로 승리했다. 1점도 김정후의 홈런이었다. 김정후는 "자신감이 붙었던 계기"라며 웃어보였다.
지난해 5월 한국에 돌아온 그는 넥센, LG, 두산 등을 입단 테스트를 받은 그는 두산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마무리캠프에 참가한 그는 150km의 공을 던지면 눈도장을 받아 시즌 전 정식 선수가 됐다.
시범경기 두 경기에서 여전히 빠른 공을 던졌지만, 1이닝 3볼넷 1실점으로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그는 개막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3일 투수 보강 차원에서 1군 엔트리에 포함됐고, 지난 10일 프로 첫 마운드에 올랐다.
'두 번째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그는 설렘 가득한 표정이었다. 첫 경기를 마친 김정후는 “얼떨떨했다. 수천번, 수만번 생각했던 장면이었는데, 첫 단추를 잘 꿴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날 김정후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태형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아웃카운트를 잡은 줄 알았다"라며 웃으면서도 "정말 잘 던졌다. 김정후가 지금과 같이만 해주면 정말 쓰임새가 많을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김정후는 "너무 감사해서 나도 모르게 몸동작이 크게 나온 것 같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나 성공적인 데뷔전에 기쁨은 감출 수 없었다.
호흡을 함께 맞췄던 포수 양의지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김정후는 "잠깐이지만 마운드에 올라갈 때 (양)의지 형이 멘탈을 잡아줬다. 공이 좋으니 가운데만 보고 던져라. 직구만 던져라고 해준 덕분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들어갔다"고 미소를 지었다.
롤모델은 오승환(토론토)을 들었다. 역동적인 투구폼 역시 수없이 본 오승환의 영상에서 나왔다. 그는 "오승환 선배님의 동영상을 정말 많이 봤다. 또 대학교 선배님이시기도 하다"라며 "잘 안 풀리거나 그럴 때마다 오승환 선배님의 동영상을 본다"고 설명했다.
첫 데뷔전을 무사히 마친 그는 13일 두번째 등판을 가졌다. 그리고 김정후는 다시 한번 자신의 필요성을 보여줬다. 12-0으로 앞선 9회말 1이닝을 삼자범퇴로 끝냈다. 김정후는 "항상 팀이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좋은 선배, 좋은 후배가 되고 싶다"라며 "지금 모든 것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bellsto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