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잠이 깼다. 날 밝으면 어머니가 나무도시락에 김밥을 싸 주시겠지. 주전부리도 사 놓았겠다…. 찐 달걀에 곁들이는 별 일곱짜리 사이다 맛이란. 가는 곳이 대수랴, 하루 오롯이 즐기는 소풍인데. 그 설렘도 희미해진 지금 새삼 궁금한 것이 있으니, 정말 찐 달걀이었을까.
찐다 함은 끓는 물의 김으로 익히는 일. 그냥 물에 끓여 익히기(삶기)보다 시간도 품도 더 든다. 먹고살 만해진 오늘날도 잘 안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찐 달걀은 한 적 없다는 어머니. 삶은 달걀이었구나. 이렇듯 혼동(混同)하는 말이 '삶다/찌다'뿐인가. '굵다(가늘다)'와 '두껍다(얇다)'를 살펴보자.
"나란히 누워 잠드는 장면이었는데, 다리로 착각했을 만큼 팔이 두꺼워서 깜짝 놀랐다." 한 배우가 동료 마동석을 가리켜 한 말이다. 체육학 전공하고 신체 단련 전문가로도 지내 몸피가 좋은 모양인데. '두껍다'는 넓적한 물체의 높이가 크다는 말. 넓적하지도, 높이를 말하지도 않는 팔에 들어맞지 않는다. 마땅히 둘레나 부피의 크기를 뜻하는 '굵다'가 바르다. 부끄럽게도 신문 독자들이 심심찮게 보내주는 일깨움이다.
살갗·입술·뱃살 따위는 두껍거나 얇지만, 머리카락·허리·종아리 따위는 굵거나 가늘다. 굵은 고구마라고 껍질도 굵으냐 하면, 두껍거나 얇다. 가는 목소리는 있어도 얇은 목소리는 없다. 판판한 얼음은 두께로 표현하는데, 음료에 타는 덩어리진 얼음은 굵기로 표현한다. 이 덩어리가 작으면? '가늘다'보다 '잘다'가 어울린다.
민망한 일이 더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 '두껍다: 두께가 보통의 정도보다 크다.' 그럼 두께는? '두꺼운 정도'란다. 돌고 도는 뜻풀이, 이른바 순환논법(循環論法)의 오류다. 두꺼운 사전 암만 뒤져도 '두껍다'의 뜻을 제대로 밝힐 수 없어서야.
철쭉이 발그레한 입술을 잔뜩 오므린 계절. 톡 쏘는 그 초록 병 챙겨 나들이 가고 싶다. 집사람 구워삶아야지. 계란은 쪄서 가져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