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식 부재 핑계보다 분리수거 유도할 수 있는 장치 마련도 시급
'미화원이 또 분리하겠지'라는 마음 들지 않게 해야
주말보다 완연해진 봄날씨 덕분이지 흩날리는 벚꽃 아래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찬 9일 오후 여의도 윤중로는 활기가 넘쳤다.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 전단지, 먹고 남은 쓰레기 등을 쥐고 산책하는 사람들은 종종 눈에 띄었지만 그걸 길거리에 그냥 버리는 모습은 목격되지 않았다. 거리도 깔끔했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 이후 쓰레기 처리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개선됐다는 결론을 내려는 찰나 쓰레기 분리수거 통을 들여다봤다.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엉켜있는 지저분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9일 여의도 봄꽃축제 현장에서 분리수거는 여전히 뒷전이었다. 작년부터 환경지킴이 자원봉사로 행사장 내 분리배출을 담당하고 있는 강씨(45)는 “시민들이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 건 쓰레기 대란 이후나 전이나 변한 게 없다”고 말하며 “내가 옆에서 잘못된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으면 그제서야 제대로 분리수거하는 시늉을 하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막 버린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기자가 분리수거 쓰레기통 앞에서 지켜본 결과 10명 중 단3명 정도만이 분리수거를 실천했다. 일산에서 봄꽃축제를 보러 온 윤연순(61)씨는 분리수거통을 한 번 들여다 보더니 “분리수거가 100% 잘 되고 있다고 얘기는 못하겠다”고 씁쓸해했다.
◇분리수거에 대한 시민 의식의 부재 VS 분리수거 유도 않는 구청의 안일함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원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차다. 대다수는 분리수거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부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분리수거통에 버려진 쓰레기를 한데 모으고 있던 구청 환경미화원 B씨는 "시민들이 어차피 분리수거를 안하니까 3개의 분리수거 통에 있는 쓰레기를 다시 한 곳으로 모아 재활용센터로 보내는 것"이라며 "시민들이 잘 버렸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되는 문제는 시민들의 분리수거를 제대로 유도하지 못하는 구청의 안일함에서 비롯됐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시민들은 분리수거통의 애매한 분리 기준을 문제삼았다. 여의도 윤종로에는 20개의 분리수거 장소가 일정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각 분리수거 장소는 총 3개의 분리수거통을 마련해 놓고 있는데, 각각의 분리수거통은 ’일반쓰레기’, ’병류,캔종류’, ’비닐류,종이팩’으로 나뉘어 표시가 붙여져 있다. 병류와 캔종류, 비닐과 종이팩 처럼 다른 종류의 쓰레기들을 한 데 모아 버리도록 표시한 것이다. 게다가 ‘병류’라는 글자 뒤에는 유리병과 페트병 둘다 포함한다는 괄호가 쳐 있다. 유리병, 페트병, 캔 이렇게 3종류가 분리되지 못한 채 한 쓰레기통에 일괄적으로 담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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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막상 분리수거를 하려다가도 뭉뚱그려진 분리기준을 확인하고는 ‘그냥 아무 통에다 버려도 상관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초등학생 딸과 쓰레기 자원봉사를 나온 이연희(38)씨는 “분류기준이 뚜렷하지 않아서 시민들이 ‘어차피 나중에 (미화원분들이)또 분리하시겠지’라는 마음으로 더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A씨(50) 역시 “쓰레기통 3개가지고 어떻게 제대로 분리를 하겠나”라고 되물으며 “짬뽕이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행사 내 분리배출을 담당하는 시민 자원봉사자 최모씨(52) 역시 “폐비닐 분리의 중요성을 최근에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더러워진 종이하고 비닐을 왜 같은 통에다 넣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눈에 띄지 않는 분리수거 표기도 제대로 된 분리수거를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반응도 많았다. 시민들의 시선 한참 밑에 위치한 작은 크기의 표기로는 분리수거를 유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자 강씨(45)는 “분리수거 표시가 눈에 띄지 않게 표시되어 있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말하며 “의식하지 않는 이상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민욱(24)씨는 “작은 팻말이라도 설치해줬으면 지나가면서 의식적으로 분리수거를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숙한 시민의식 기대하기 전에 분리수거 수월하게 만들어야
시민들은 공통적으로 '분리수거를 유도할만한 장치의 부재'를 언급했다. 일례로 플라스틱은 뚜껑을 떼도 내용물을 비워 배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내용물을 버릴 수 있는 통은 구비되어 있지 않다. 강 씨(45)는 "먹다 남은 음료수를 여기에다 버리면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며 "여기다가 안에 있는 내용물만 버릴 수 있는 통을 구비해 놓는 등의 조치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희(38) 씨는 "사람들이 이제 분리수거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이상 캠페인 차원에서 분리수거 표시를 더 명확하게 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할 거 것 같다"고 쓰레기 문제에 대한 구청의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축제 장소이기 때문에 통행에 불편을 줄 수 있어 쓰레기통을 3개로 줄인것 뿐”이라며 분리수거통의 애매한 분리 기준에 대해서는 “병류와 캔류는 부피가 크고 재활용이 잘되는 품목이라 따로 모았고, 비닐과 종이를 한 데 묶어 분리한 이유는 부피가 적고 상대적으로 배출량이 적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관계자는 “분리수거 쓰레기통을 구분지어 더 많이 배치한다고 해도 시민들이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아 어차피 선별작업은 거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