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정금(56)씨는 며칠 전 북한산 원효봉에서 다른 등산객과 얼굴을 붉힌 일이 있었다. 발단은 고양이였다. 한 등산객이 가져온 김밥을 봉우리 근처에 있던 예닐곱 마리 고양이들에게 줬다. 김씨가 "산에서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면 안 된다"고 했더니, 등산객은 "고양이는 굶어 죽으라는 거냐"고 따지듯 반문했다. 김씨는 "1~2년 전부터 산 정상에 고양이들이 부쩍 늘었다. 해발 800m 백운대에도 고양이들이 산다"고 했다.
최근 산에 가면 무리지어 다니는 고양이 떼를 심심찮게 본다. 먹이를 주는 등산객을 따라 산 정상 부근까지 올라온다. 북한산뿐 아니라 관악산 연주대, 부산 금정산 고당봉, 대전 보문산 등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마다 비슷한 풍경이다. 무심코 먹이를 주는 등산객이 있고, 길거리 고양이를 돌보는 '캣 맘(cat mom)'들이 일부러 음식을 챙겨와 주기도 한다.
'산 고양이'는 등산객 안전에 위협이 된다. 대학원생 최모(32)씨는 최근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해발 630m)에 올랐다가 고양이 떼가 몰려드는 바람에 미끄러졌다. 김씨는 "가방에서 물을 꺼내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고양이 7~8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고 했다.
산 정상을 점령한 고양이들은 야생동물을 해치고 생태계를 위협한다. 다람쥐·산새처럼 작은 동물을 마구잡이로 잡아먹는다. 한국고양이수의사회 김재영 회장은 "고양이는 사냥 본능이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산속의 설치류를 공격할 수 있다"고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산국립공원에서 파악된 고양이는 100마리 이상이다. 고양이들을 포획해 중성화하거나 '들고양이 먹이주기 금지' 등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그래도 먹고 남은 음식을 고양이 밥이라며 두고 가거나 산 정상에 사료를 가져와 뿌리는 탐방객들을 막기 어렵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