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하순부터 불거진 '폐비닐 수거 중단' 사태는 중국의 폐자원 수입 중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환경부의 정책 변경에서 촉발된 것이라고 3일 재활용품 업계가 주장했다.
폐플라스틱 수거 중단은 중국 금수(禁輸) 조치가 주원인이지만 "폐비닐은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거의 없고 대부분 국내 처리되는데 환경부가 중국 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전국 가정집에서 나온 폐비닐(생활 폐기물) 41만8000t(2016년 기준)의 70% 이상은 고형 연료(SRF)로 만들어져 발전소 등지로 팔렸다. 나머지 분량은 대부분 국내서 소각·매립됐다. 전체 발생 물량의 25%가 중국으로 수출되는 폐플라스틱과는 처리 경로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문제는 과거 정부가 신재생에너지로 적극 도입했던 고형 연료가 지금은 미세 먼지를 배출하는 '환경 파괴범'으로 몰리면서 가정집 폐비닐이 애물단지가 됐다는 점이다. 재활용 업체 관계자는 "발전소 등의 SRF 수요가 줄고 정부 단속이 강화돼 폐비닐을 수거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최근 빚어진 폐플라스틱 수거 중단 사태는 폐비닐부터 시작돼 페트병 등 다른 플라스틱 용기로까지 확대됐다.
그런데 애초 시발점인 폐비닐 수거 거부 사태는 "환경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이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재활용품 업계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미세 먼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데다, 주민들이 오염 물질을 배출한다는 이유 등으로 고형연료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자 환경부가 지난해부터 SRF 제조 공장 등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였다"면서 "그동안 SRF 제품을 납품받던 발전소 등도 반입을 꺼려 수요가 감소하자 폐비닐 수거 거부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03년 폐자원 에너지화 등을 위해 폐비닐을 재활용한 SRF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를 통해 폐비닐 재활용량이 2003년 1732t에서 2015년 18만8653t으로 약 108배 증가했다. 당시 SRF는 '폐기물도 처리하면서 발전·발열이 가능한 신개념 연료'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2013년 고형 연료의 추락이 시작됐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당시 정부가 사업장 폐기물로 만든 '비성형 고형 연료' 사용까지 허가하면서 고형 연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쓰레기 태우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나빠졌다"면서 "여기에 저유가 현상이 이어지면서 고형 연료의 가격 경쟁력도 약해지면서 고형 연료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의 강력한 단속도 SRF 제조 재활용 업체들을 위축시켰다. 재활용 업체 등에 따르면, 현재 SRF 제조사들은 품질검사, 제조시설 검사 등 연 15회 이상의 검사를 거쳐야 한다. 재활용 업계 관계자는 "생활 폐기물에 든 비닐뿐 아니라 사업장에서 나오는 폐비닐도 SRF로 가공하도록 허가하면서 과거에 비해 8회 이상 필수 검사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다른 오염 물질 배출업체는 기준을 한 번 위반하면 개선명령을 하는데 SRF 업체는 한 달간 휴업을 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가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의 정책 변경으로 SRF 제조업체들이 경영난에 처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전 정부가 '폐자원 에너지화'를 이유로 장려하던 SRF 수요처가 현 정부 들어 급감하면서 가정집에서 배출되는 폐비닐 수거 중단 사태로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가정집 폐비닐은 SRF로 재활용하지 않으면 소각·매립 등으로 폐기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환경오염 물질이 발생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SRF를 연료로 쓰든 소각하든 오염 물질 배출 기준은 동일하기 때문에 SRF가 소각보다 오염 물질을 더 많이 배출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폐비닐 수거 거부 사태가 또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 측은 "SRF 업계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SRF 사용에 따른 건강 문제 등을 염려하는 국민 우려도 크다"면서 "이번 폐비닐 수거 거부 사태를 계기로 SRF 사업을 상세히 검토하고 규제 완화 등 지원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SRF(Solid Reuse Fuel·고형연료)
가정에서 발생하는 폐비닐이나 사업장에서 나오는 폐비닐·고무 등을 선별·파쇄·압축·건조 처리한 것. 신재생에너지의 일종으로 열병합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산업용 보일러 등에서 고체연료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