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면 날씨보다 미세 먼지부터 체크하는 요즘 '높고 구름 없이' 맑은 날씨는 애국가에서나 가능할 지경이다. 미세 먼지는 패션도 바꿔놓고 있다. 독감이나 성형수술 환자들만 쓰고 다니던 마스크는 생필품이 돼버렸다. 방독면처럼 공기 흡입구가 달린 마스크도 거리에서 볼 수 있다.

미세 먼지 패션은 지금 가장 핫한 패션이자 불안하고 혼돈스러운 세상을 몸으로 알리는 메신저가 되고 있다. 지난달 서울서 열린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는 복면 패션과 마스크 패션이 화제였다. 독특한 마스크 디자인으로 레이디 가가, 저스틴 비버 등 미국 팝스타를 고객으로 둔 패션디자이너 바조우(본명 박종우)의 작품은 다양한 소재의 운동복과 거의 얼굴 전체를 덮는 발라클라바(balaclava·복면의 일종)로 눈길을 끌었다. 신규용·박지선 디자이너의 작품 '블라인드니스(BLINDNESS)'는 군복과 꽃무늬를 결합해 평화와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았다.

지난 3월 열린 헤라서울패션위크의 ‘블라인드니스’ 패션쇼(왼쪽). 일본 아마존도쿄 패션위크에서 화제가 된 다카히로 미야시타의 작품(오른쪽).

미국 포틀랜드 브랜드 나우(nau)도 최근 패션쇼에서 친환경 소재 의상 차림에 마스크를 씌워 도시 환경 위기를 외쳤다. 인스타그램에서 화제인 중국 디자이너 왕지준(@zhijunwang)은 이지 부스트(아디다스), 에어모어 업템포 슈프림(나이키), 베이퍼 맥스(나이키) 등 인기 운동화 모델을 해체해 마스크로 재탄생시켜 사람들을 열광케 했다. 중국 미세 먼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나이키 운동화를 뜯어 마스크로 만든 중국 디자이너 왕지준의 작품. 모델이 들고 있는 것이 재료가 된 신발이다(사진 위). 아래 사진은 스웨덴 회사 에어리넘의 마스크로 가격은 7만~8만원.

해외에서는 이런 패션을 '스모그 쿠트르(smog couture·대기오염 의상)'라 부른다. 디자인과 색상을 적극적으로 가미한 마스크를 아이돌 그룹이 애용하면서 '얼굴을 가림으로써 오히려 정체성을 드러내는' 패션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시위대가 마스크를 쓰면서 반항적이고도 전복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마스크가 환경 보호를 주장하는 패션 아이템이 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뉴욕·밀라노·파리 패션쇼에서 환경 대재앙과 핵전쟁 이후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요소들이 '종말(apocalypse) 패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며 방진 마스크와 방호복으로 장식된 쇼 무대를 소개하기도 했다.

'마음껏 숨 쉬고 싶다'는 기본적 욕구는 패션계 블루 오션으로 꼽히고 있다. 스웨덴 마스크 브랜드 에어리넘은 창업자가 공기 탁한 인도에서 천식으로 고생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북유럽 디자인에 각종 필터 등 기능을 갖춰 전 세계 50여개국에서 팔린다. 중국 샤오미는 공기 청정 기술을 더한 마스크를, 영국 브랜드 프레카는 '디자이너 페이스웨어(얼굴에 입는 옷)'라는 분야를 만들어내 개당 10만원 안팎에 팔고 있다. 최근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자전거 탈 때 좋은 오염 방지 마스크'로 꼽은 '레스프로' '토토보보' '보그마스크' 등 해외 브랜드는 아마존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세계 소비자들에게 팔리고 있다.

노스페이스는 방진 기능이 있는 재킷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같은 소재로 만든 마스크를 경품으로 제공했다. 정전기 발생을 최소화하는 원단으로 황사와 미세 먼지가 옷에 달라붙는 것을 줄여준다고 한다. 선착순으로 준 마스크를 구하려고 매장에 문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코까지 목선을 올리는 재킷이나 코트도 최근 인기다. 코오롱스포츠 방미애 상무는 "목선이 높아 입과 코를 보호하고 모자까지 달린 스타일의 기능성 재킷이나 트렌치코트가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