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팬 A씨는 작년 말 '워너원' CD를 210장이나 샀다. 약 400만원어치다. 그렇게 한 이유는 CD마다 1장씩 들어 있는 팬 사인회 응모권 때문이다. A씨는 이렇게 모은 응모권 210장을 냈으나 팬 사인회 추첨에서 떨어졌다. 그는 트위터에 CD 사진을 올리며 "당첨자 대부분이 CD를 100장 넘게 샀다고 한다"고 썼다.
팬 사인회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을 직접 만나려고 CD를 수백 장씩 사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이들을 노린 장삿속도 유별나다. 아이돌이 광고 모델을 하는 의류·신발 회사는 옷이나 신발을 얼마어치 이상 사면 팬 사인회 응모권 1장을 준다. 팬들은 옷과 신발을 수백만원어치 사서 팬 사인회에 응모하기도 한다. 응모권은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수만원대에 팔리고 있다.
팬 사인회 참석 인원은 대개 100명 안팎. '팬 사인회 컷'이란 말도 생겨났다. '팬 사인회 커트라인'의 준말이다. '팬 사인회 컷이 50장'이라고 하면 CD 50장을 사서 응모권 50장을 내 봐야 당첨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엑소' '방탄소년단'의 팬 사인회 컷은 100장, '레드벨벳'은 20장 등이다. 최고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팬 사인회 경쟁률은 수백대1에 이르기도 한다. 팬 사인회는 아이돌 멤버들이 일렬로 앉아 있고 그 앞을 팬들이 지나가면서 차례로 사인 받고 몇 마디 주고받거나 악수하는 정도가 전부다.
팬 사인회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군말도 나온다. "CD나 옷을 많이 산 순서대로 뽑는다" "당첨자 대부분이 아이돌 회사 직원들의 아는 사람들"이란 말이 나돈다. 한 의류 업체는 작년 10월 그룹 '세븐틴' 팬 사인회 추첨을 서울 성동경찰서에서 경찰 입회하에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