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 시각) 미국 수도 워싱턴DC 펜실베이니아애비뉴 연단에 선 삭발 소녀는 격정적인 연설을 이어가다 갑자기 말을 멈췄다. "절대 다시는 안 돼(Never again)"를 외치던 군중도 일제히 구호를 멈췄다. 연단의 소녀는 한참의 침묵 끝에 연설을 재개했다. '침묵의 흐느낌'을 포함한 총 연설 시간은 6분 20초.

다신 볼 수 없는 친구들 향한 ‘침묵의 흐느낌’ - 총기 규제 집회에서 6분 20초간 연설한 플로리다 총기 난사 사건 생존 학생 에마 곤살레스.

소녀는 지난 2월 14일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시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 학생 에마 곤살레스(17)였다. 그는 "그날 AR-15(공격용 소총)와 함께한 6분 20초 동안, 제 친구 카르멘은 더 이상 제게 피아노 연습을 하자고 조를 수 없게 됐고, 알렉스가 동생 라이언과 함께 교정을 걷는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곤살레스는 숨진 17명 친구의 이름을 다 부르고 나서 "이제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총기 규제를 위해) 투표합시다"라고 외쳤다.

이날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미 전역 800여 개 도시에서 열렸다. 워싱턴에서만 80만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고 NBC 등이 보도했다. 1969년 워싱턴에서 열린 베트남 반전 시위 인원(50만~60만명)보다 많았다.

美국회의사당~백악관 사잇길 꽉 메운 사람들 - 24일(현지 시각)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미 워싱턴DC 의회 주변을 가득 메웠다.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라는 주제로 한 이날 집회는 미 전역 800여 개 도시에서 열렸고, 워싱턴에서만 80만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학생과 시민뿐 아니라 비틀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 등 유명 인사들도 집회에 참석했다.

이날 시위의 주도자이자 주인공은 학생들이었다. 총기 난사 사건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이 대규모 집회를 조직하고 전미총기협회(NRA) 규탄과 NRA 협력사에 대한 불매운동, 총기 규제 캠페인을 주도해왔다. 20여 명의 학생이 연이어 연사로 나섰고,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손녀인 아홉 살 욜란다 르네 킹도 연단에 올랐다. 킹 목사도 암살자의 총격에 쓰러졌다. 욜란다는 할아버지의 명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발언을 시작해 "나에게도 총기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할아버지 명연설’ 인용한 마틴 루서 킹 손녀 - 욜란다는 “나에게도 ‘총기 없는 세상’이라는 꿈이 있습니다”고 연설했다.

유명인들의 지원도 줄을 이었다. 아리아나 그란데, 마일리 사이러스 등 유명 가수들이 공연을 하고 행진에도 참여했다. 뉴욕의 시위에는 록밴드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도 모습을 보였다. 그는 "1980년 총격에 희생된 동료 존 레넌이 발걸음을 이끌었다"고 했다.

“존 레넌 떠올라…” 폴 매카트니도 거리로 - 비틀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는 총격 사망한 동료 존 레넌을 떠올려 시위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위터에 청소년들을 향해 "계속해라. 여러분은 우리를 전진시키고 있다. 변화를 요구하는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격려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민주당 인사들은 응원글을 올렸지만 공화당 인사들은 별다른 지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워싱턴의 시위 행렬은 백악관 인근까지 이어졌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플로리다 휴양지인 마러라고 리조트로 떠나버렸다.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백악관이 성명을 내고 "수정헌법 1조(언론·출판·집회의 자유)의 권리를 행사하는 많은 용감한 미국인에게 박수를 보낸다"고만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999년 콜로라도주 콜럼바인 고교 총격 참사 이후 지난 20년간 200여 명의 학생이 학교 총격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간 중 총격 사건을 경험한 학생만 18만7000명에 달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총기 구매 연령 상향, 구매자 신원조회 강화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11일 이런 조항이 모두 빠진 '맹탕 대책'만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