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聖畵)를 읽을 줄 아십니까?"
1980년 여름 아테네 신학대 재학 중이던 암브로시오스 학생은 이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이집트 시나이사막의 유서깊은 성 카테리나 수도원에서 성화 컬렉션을 관람하던 중 현지 수도사가 던진 질문이었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수도사는 "모든 성화는 하나의 펼쳐진 책과 같아서 상징적 언어를 알아야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이후로 신학생에게 '성화 읽기'는 화두가 됐다. 한국정교회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58·사진) 대주교 이야기다. 그리스 출신인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40년 가까운 연구 결과를 모아 최근 '비잔틴 성화 영성예술 1·2'(정교회출판사)를 펴냈다.
그의 '독화법(讀畵法)'을 따라 그리스, 이집트, 러시아, 세르비아 그리고 한국 정교회 성당·수도원에 소장된 작품 52점을 읽어나가면 지금까지 잘 몰랐던 정교회 성화의 흥미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성 니콜라스 대성당 남쪽 벽면엔 '주님의 부활'이란 한글 제목이 적힌 벽화가 있다. 중앙에 흰옷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가 양손으로 흰 수염 할아버지와 주름살 가득한 할머니의 손목을 잡아 끌어올리고 있다. 아담과 하와다. 그림 아래쪽엔 부서진 자물쇠와 열쇠가 나뒹굴고 있다. 지옥까지 내려간 그리스도가 지옥문을 깨고 관 속에 누워 있던 이들을 구원하는 내용이다.
역시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 소장한 서미경 따띠안나씨의 작품 '세족식'.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이 장면에서 모든 등장인물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오른쪽 끝의 한 사람만 옆모습으로 그려졌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다.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비잔틴 성화에선 인물이 등진 모습으로 있을 때에도 두 눈과 얼굴 전체를 볼 수 있게 그리는데, 예외가 있다. 그것은 죄로 인해 하느님과 관계가 단절된 사탄이나 유다 혹은 완고한 죄인"이라고 설명한다.
책을 읽으면 "성화는 설명이다. 말[言]이 청각을 위한 것이듯 형상은 시각을 위한 것으로서 결국 같은 것"이라는 말뜻이 이해된다. 한국정교회는 27일 오후 6시 30분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이 책의 출판기념회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