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일 이장석(52) 전 넥센 히어로즈 대표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008년 3월 '히어로즈'구단을 만들어 야구판에 뛰어든 지 10년 만의 일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법원의 실형 선고 후 곧바로 이 전 대표를 직무 정지했다. 이날 실형 선고 후 재판장이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이 전 대표는 "특별히 없습니다"고 짧게 답했다.
이 전 대표는 2008년 자본금 5000만원, 직원 2명의 회사인 '센테니얼 인베스트'를 모체로 야구단을 창단한 후 히어로즈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2016년 히어로즈는 매출액 626억원을 기록했고, 그 해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는 사기와 횡령·배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수감된 이장석, 히어로즈에 어떤 일이
이 전 대표와 히어로즈에 대한 검찰 수사는 2008년 그가 야구단 창단 때 썼던 한 장의 계약서에서 시작됐다. 이 전 대표는 당시 야구단을 창단했지만, KBO가 창단 가입금으로 요구한 120억원은 내지 못한 상태였다. 1차 분납금 12억원은 마련했지만, 2차분 24억원은 마련하지 못했다. 여러 곳에 투자를 제안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가입금을 내지 못하면 야구단 운영을 포기해야 했다. 이 전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를 '매일 자살을 생각하던 시기'라고 한 적이 있다.
이때 이 전 대표가 찾은 이가 재미교포 사업가 홍성은(72) 레이니어그룹 회장이다. 홍 회장은 부동산 투자로 미국에서 부를 이룬 인물이다. 그는 홍 회장에게 20억원을 투자하면 지분 40%를 주겠다고 설득해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초반 분납금을 낼 수 있었고 히어로즈는 위기를 넘겼다.
문제는 이 전 대표가 주식을 양도할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2011년부터 홍 회장이 지분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 전 대표는 꿈쩍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급전이 필요해 도움을 받았지만, 현재 67%의 주식을 가진 이 전 대표는 40%의 주식을 양도할 경우 경영권을 잃을 수 있다. 이 전 대표는 20억원에 이자를 쳐 갚겠다고 맞섰다. 홍 회장은 2016년 이 전 대표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 수사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검찰이 이 전 대표가 히어로즈에서 저지른 횡령과 배임 혐의를 추가로 밝혀낸 것이다. 야구단은 기업의 후원, 관중 수입, 매점 등 경기장 시설 운영, 중계권료, 선수 트레이드 등으로 수익을 얻는다. 히어로즈는 이 전 대표가 수익에 대한 모든 자금줄을 쥐고 회삿돈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구조였다. 검찰은 이 전 대표와 남궁종환 부사장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장부를 조작해 회삿돈 20억원을 빼돌린 뒤 개인 비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8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야구장 입점 매장 보증금을 빼돌리거나 접대비 명목으로 상품권을 구입한 후 다시 현금으로 바꾸는 등의 수법을 써 돈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대표는 야구단 돈으로 유흥주점을 인수하도록 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 2월 술집을 다니다 알게 된 이모씨에게 덜컥 '인수 자금을 빌려주겠으니 유흥주점을 하나 인수하라'고 제안했다. 이씨는 별다른 자산도 없고 빚을 갚을 능력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이 전 대표는 자신의 돈도 아닌 히어로즈 자금 2억원을 임대 보증금 명목 등으로 이씨에게 빌려줬다. 실제 이씨는 이 돈을 지렛대 삼아 서울 청담동에서 유흥주점을 차렸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월 임대료 350만원과 생활비 등을 수년간 회사가 내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재판부는 "회사 투자금을 편취하고 장기간 여러 방식으로 회사 자금을 횡령하는 등 배임을 저질러 죄질이 불량하다"고 했다.
히어로즈의 미래는
실형 선고 전까지 야구계에서 이 전 대표에 대한 평가는 박하지 않았다. 한 해 300억~400억원의 비용이 드는 대기업의 공익 활동쯤으로 여겨지던 프로야구단 운영은 그의 등장 후 이윤을 낼 수 있는 사업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미국계 금융사 메를린치와 경영 자문사 ADL 등에서 일하며 잔뼈가 굵은 이 전 대표의 마케팅 활동을 벤치마킹하는 구단도 많았다. 이 전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관여했던 이기홍 전 경제기획원 차관보의 아들이자 순자산 16억달러(약 1조7152억원)를 보유한 미국의 거대 소프트웨어 판매사 SHI 소유주 이태희씨의 동생이란 사실도 그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수도권 구단의 고위 관계자는 실형 선고에 대해 "예상치 못한 일"이라며 "어떤 이유든 야구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준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야구계의 관심은 히어로즈의 미래로 향한다. 핵심은 경영권이다. 메인 후원사 선정 등과도 직결된 문제다. 홍 회장은 10년 전 20억원을 투자해 40% 지분 취득 계약을 맺었지만 현재 이 지분은 수백억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5000만원이었던 회사 자본금은 20억5000만원으로 40배가량 늘었다. 이 때문에 이 전 대표와 홍 회장의 지분 다툼은 쉽게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50%+1주 이상의 지분이 필요하다. 만약 이 전 대표가 40%의 지분을 내주면 그는 27%, 홍 회장은 40%의 지분을 갖게 된다. 어느 쪽도 경영권은 확보하지 못한다. 이 경우 25%의 지분을 가진 2대 주주와 힘을 합치기 위해 합종연횡(合從連橫)이 벌어질 수 있다. 일단 양쪽 다 항소심 판결을 기다린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