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버스 근로시간 특례업종 제외로 내년 7월부터 운전사 부족 사태
"일 2교대 전환시 시내버스 1만6000명, 시외버스 7000명 더 필요"
비용 급증하면 재정 지원 불가피…요금 인상, 노선 축소 불보듯
“요즘 버스 기사 근로시간 단축 문제만 생각하면 답답합니다. 현재 노선을 유지하려면 버스 기사들을 대규모로 충원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뾰족한 해결책이 있는 게 아니라서 더 골치가 아픕니다.”
맹성규 국토교통부 2차관은 “최근 가장 고민하는 현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마자 “버스 문제”라고 답했다. 지난달 말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내년 7월 1일부터 노선버스업이 근로시간 특례 업종에서 제외되면서 버스 기사들이 대거 필요하게 됐다는 걱정이다.
맹 차관은 “버스 회사들의 인건비 부담이 늘면 비용 부담을 누가 질 것이냐도 논란거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근로시간 제한으로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업종에 대해 근로자와 사용자의 합의를 전제로 법정근로시간에 상관없이 초과근무를 할 수 있는 근로시간 특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시내버스, 시외버스, 고속버스 등 노선버스 업종이 내년부터 대규모 인력 부족 사태를 겪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최근 정부, 지방자치단체, 국회 등으로 보낸 탄원서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노선버스 업계에 적용되면 운전자가 지금보다 2만4000명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선버스 운전자 수를 집계한 통계는 없지만, 2016년말 현재 시내버스, 시외버스 운수업 종사자 수는 10만5800명에 달했다. 현재 노선버스 업체 직원수의 22.7%에 해당하는 인원이 더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모든 시의 경계 내에서 운행하는 시내버스의 경우 1만6000명, 지자체 사이를 오가는 시외버스는 7000명 정도의 운전자가 더 필요한 것으로 집계됐다.
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현재 모든 버스운전을 1일 2교대로 전환한다고 가정하고 추정한 것”이라며 “운행 간격, 노선 배치 조정 등을 감안한 정확한 추계치도 산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현재 근로시간 특례업종인 노선버스는 격일제로 하루는 17시간 정도 일하고 다음날은 쉬는 게 일반적인 근무형태다. 1일 2교대제로 한 번에 9시간씩 일하는 서울 및 광역시 시내버스가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노선버스업이 지난달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하루 8시간, 한 주 52시간 일해야 하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됐다. 노선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 사고 등 장시간 운전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노선버스업이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문제는 근로시간 특례업종 제외로 대규모 인력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노선버스 운전기사는 고질적인 인력 부족과 시간외 근무수당 등의 이유로 격일제 근무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다. 이런 근무 행태가 내년 7월부터 불법이 되면서 그만큼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근로기준법 특례업종 제외 시기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내년 7월 1일부터,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그 이하는 2021년 1월부터다. 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시내버스 종사자 중 34.7%, 시외버스 종사자 중 55.7%가 300인 이상 사업자에 근무한다. 얼핏 보면 운전자 부족에 대응할 시간이 최소 1년 이상 남아있다. 그러나 “운전자 수급이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닌데다 기존 근로자 급여 조정, 요금 책정, 노선 배분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있어 사실상 올해부터 이슈가 되는 사안”이라는 게 국토부와 버스 업계의 설명이다.
◇ 광역버스 운행 축소 가능성…수도권 출퇴근 어떻게
노선버스의 근로시간 특례업종 제외로 운전기사 수요가 대폭 늘어나지만 새로운 운전기사를 대규모로 늘릴 방법은 마땅치 않다. 버스업계 한 관계자는 “워낙 인원이 많이 필요해 급여를 더 주고 운전자를 데려오려고 해도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군 복무 중 대형 버스를 운전한 병사나 부사관들이 전역시 버스 1종 대형 면허를 따기 쉽게 하는 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다”며 사실상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전세버스 기사들이 노선버스 업체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대안이지만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는 서울과 수도권 도시를 연결하는 광역버스에서 운전기사 부족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맹 차관은 “광역버스의 경우 2500명 정도의 운전자들이 더 필요한 상황인데, 광역버스 업체들이 그만큼 인건비 상승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광역버스 업체들이 노선을 축소할 수 있다. 운행 편수를 줄여 버스 한 대에 태우는 승객수를 늘리고, 비용 증가를 억제하는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 임금감소로 노사 갈등 가능성까지
국토부와 버스업계는 노선버스 운전자의 임금 조정도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봤다. 현재 노선버스 운전기사의 급여 중 시간외 근무 수당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근로시간이 줄면 자연스레 급여가 줄게 되는 구조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7월 발간한 ‘여객자동차(버스) 운전자의 근로시간 관련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 “근로시간 조정에 따라 수당 등이 감소하면, 운전자 처우가 더욱 열악해지고 노사간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드는 임금을 어느 정도 보전해 줄지, 그리고 누가 그 부담을 질 지 갈등이 불거질 것 있다"고 우려했다.
노선버스 업계에선 기존 운전자의 시간당 급여 상승, 추가 운전자 채용 등으로 인건비가 크게 늘어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인건비 부담이 20~30% 정도 추가 발생할 것”이라며 “2014년 이후 5년 간 운임 인상이 없었음에도 유가가 낮아 근근이 버텼던 상황인데, 수익성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버스 요금 인상과 지자체 재정 보조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그나마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광역시나 경기도 일부 지역은 탄력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며 “하지만 인천 광역버스 등 민간 사업자가 노선버스를 운영하는 곳은 늘어나는 비용을 누가 보전해 주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 여력이 빈약한 상당수 지자체의 경우 노선버스에 투입할 돈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