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할 정도로 닮지 않았나요?"

가수 김현철(49)씨가 자신의 휴대폰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데칼코마니를 펼쳐놓은 듯 판박이 같은 아이 둘이 나란히 웃고 있었다. 36년 시차를 두고 각각 닭띠해에 태어난 김씨와 그의 둘째 아들 정안(13)이의 여섯 살 무렵 모습이다. 김씨는 "이 사진을 볼 때면 자식과의 만남은 필연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는 그런 존재"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난 김씨는 "가수나 방송인 자격으로는 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아빠'란 직함을 걸고 하는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올해로 가수 데뷔 30년째다.

자전거 마니아인 가수 김현철(가운데)씨는 아이들이 더 크면 세계적인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 코스를 함께 달려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지난해 여름 자택이 있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 인근에서 큰아들 이안(오른쪽), 둘째 아들 정안(왼쪽)이와 함께 자전거를 탄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창 가수 겸 작곡가로 주가를 올리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김씨는 싱글 남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동료 가수인 이현우, 윤상, 윤종신씨와 함께 '노총각 4인방'으로 불리며 함께 광고에도 출연했다. 이들 네 명 모두 지금은 최소 두 자녀 이상을 둔 아빠가 됐다.

아이가 태어난 뒤 김씨는 금세 '아빠의 삶'에 적응해 갔다. 자신의 일정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장점을 육아에 적극 활용했다. "덕분에 주변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부부가 아이들을 직접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늦게 들어오는 날에도 가급적 아이들 목욕은 직접 시켰고, 첫째 출생 직후엔 약 1년간 이유식 만드는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직접 이유식까지 챙겼지요." 기저귀를 가느라 밤잠을 설치다 보면 힘들고 짜증 날 때도 있었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현철(사진 왼쪽)씨와 둘째 아들 정안이가 각각 여섯 살 무렵 찍은 사진.

김씨는 "아빠가 되는 것은 제 인생을 바꿔놓은 작은 혁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한 생명체가 태어나 웃고 말을 거는 것을 보며 나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닌 아이와 함께, 가족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2년 결혼한 뒤 발표한 석 장의 정규 음반 가운데 두 장이 아이들을 위한 '키즈 팝(Kids Pop)' 앨범이다. 어릴 적 '산할아버지' '개구쟁이' 같은 어린이 노래를 발표했던 록그룹 '산울림'이나 '나의 작은꿈'을 부른 '작은별 가족'의 음악을 들으며 막연히 "나도 언젠가 아이를 낳으면 이런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꿈꿨는데 실행에 옮긴 것이다. 첫째 이안(15)이가 태어난 직후 수년간 태교음악 등을 바탕으로 태아를 위한 EQ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김씨는 "(데뷔 후) 지금까지 발표한 아홉 장의 앨범보다 두 장 키즈 팝 음반이 내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모 생각에 맞춰 아이가 어떤 식으로 되기를 바라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며 "알아서 자기 길을 찾아가도록 놔두자는 입장"이라고 했다. 여러 악기에 능통한 그이기에 집 안에 다양한 악기를 비치해놨지만 아이들이 먼저 배우겠다고 하기 전까진 가르칠 생각이 없다. 김씨는 "아이들이 아빠를 같은 반 모범생 친구처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끼면서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됐으면 한다는 얘기다.

김씨는 '아빠와 단둘이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5년 전엔 첫째와 단둘이 이탈리아로, 올해 초엔 둘째와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김씨는 "단둘이 낯선 곳을 여행하면 어느 사이엔가 둘이 서로 의지하고 있는 것을 알게 돼요. 묘한 동질감이지요"라고 했다.

김씨는 자전거 마니아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함께 자전거를 탔다. 요즘도 집 근처 탄천을 따라 '삼부자' 동반 라이딩을 때때로 즐긴다. 김씨는 "아이들이 좀 더 크면 프랑스-스위스-독일에 걸친 (세계적인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 코스를 순례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이때만큼은 선두에 서서 두 아들을 진두지휘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