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방식은 서로 다른 법.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참한 현실을 견뎌내는 스칼렛 오하라와 멜라니 윌크스. 독하게 부딪치는 사람과 독을 품은 사람. 길을 고르는 건 자기 몫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화판 혹은 소설판을 보지 않았더라도 '스칼렛 오하라'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영화에서 스칼렛 역을 맡은 비비언 리가 워낙 아름다워 미인의 대명사처럼 생각하지만 소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스칼렛 오하라는 그다지 미인은 아니었다." 처음 소설을 써 보는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매혹적인 이 작품은 허영기 심하고 제멋대로인 미국 남부 부잣집 딸인 스칼렛 오하라가 현실과 마주치면서 싸워나가는 것, 그리고 스칼렛 오하라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알고 있는 노련한 남성 레트 버틀러와의 사랑 이야기가 크게 두 축을 차지한다.

발매 당시 미국에서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했고 영화판도 큰 인기를 누렸지만 아쉽게도 백인들의 '그들만의 리그'인 것은 피할 수 없는 비판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어느 영화관에서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분노로 떨면서 자리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던 흑인 청년이 말콤 X였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이 작품을 잘 음미하기 위해서는 소설을 권하고 싶다. 나는 어린 시절 번역으로 유명한 장왕록·장영희 부녀가 함께 번역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되풀이하여 읽으며 자랐는데, 그러면서 멜라니 윌크스라는 등장인물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무서운 여자.

물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인물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전쟁에서 패하고 옛 영광을 잃은 채 천천히 스러져가는 미국 남부의 모습은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누구나 스칼렛 오하라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작은 아씨들' 역시 시대상으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시간축 위에 서 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스칼렛 오하라의 생활은 처절하다. 전쟁 전에는 자기 손으로 마룻바닥에 놓인 양말 하나 안 주울 정도로 생활했지만, 레트 버틀러가 훔친 비루먹은 말과 낡은 마차에 의지해 폭격 속의 불타는 애틀랜타를 탈출해 타라로 향하는 스칼렛. 어머니는 전염병으로 죽었고, 아버지는 정신이 나갔으며, 동생들도 앓고 있는 데다 흑인이고 백인이고 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맏딸인 스칼렛만을 의지하는 상황이다. 북군이 휩쓸고 가 아무런 먹을 것도 없어 광주리를 들고 바람 든 무를 발견해 씹다가 그 유명한 대사를 한다. "도둑질을 하든, 거짓말을 하든, 살인을 하든 나는 절대 다시는 굶주리지 않겠어." 겨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이 없다는 둥 하는 '작은 아씨들'의 소녀들은 여기에 비교하면 호화로운 형편이다. 공교롭게도 스칼렛은 '도둑질을 하든, 거짓말을 하든, 살인을 하든'이라는 맹세에 등장하는 모든 짓을 다 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먹을 것을 달라고 스칼렛에게 보채는 타라에서 멜라니는 유일하게 자신의 먹을 것을 남에게 양보하는 유순한 여성이었다. 멜라니의 남편 애쉴리를 소녀 적부터 사모한 스칼렛에게는 그것도 보기 싫은 꼴이었다. 재산과 먹을 것을 약탈하기 위해 어느 탈주병이 타라에 들어오자, 스칼렛은 장총에 총알을 넣고 쏘아 버린 후 시체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몸도 채 회복되지 않은 가냘픈 여성의 모습이 층계에 보인다.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일 윌크스 부인, 멜라니가 무거운 군도를 가지고 나타난 것이다. 남부의 숙녀인 멜라니 역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살인을 할 결심이었다. 멜라니의 잠옷으로 탈주병의 머리를 묶어 피를 멈추게 하고 스칼렛은 자기가 죽인 시체를 아직 흙이 부드러운 곳에 묻어 버리고, 이것은 두 사람만의 비밀이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애쉴리도 타라에 돌아오지만, 그는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커튼으로 새 옷을 해 입는데, 애쉴리는 그녀가 레트 버틀러에게 가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한다. 결국 군 생활 때의 인연으로 북부에 가서 은행원이 되기로 했다고 스칼렛에게 알리지만, 스칼렛은 애쉴리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고 북부에 가버린다며 멜라니에게 하소연하고, 멜라니는 스칼렛을 위해서 처음으로 남편에게 대든다. 여기서부터 멜라니의 활약을 보면, 사실 이 소설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한 사람은 멜라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칼렛에게 의지해서 그리운 애틀랜타로 돌아가서 생활하게 된 멜라니. 그는 재혼 후 제재소를 갖게 된 스칼렛이 온갖 거짓말을 하며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한 번도 입을 대지 않는다. 오죽하면 스칼렛에게 사기를 당한 신사들이 단 몇 분만이라도 스칼렛이 남자가 되어 흠씬 팰 수 있기를 바랄 정도다.

소설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고 나면 역시 멜라니는 스칼렛이 자신의 남편을 몰래 사모한 것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살인과 거짓말을 해온 스칼렛보다 멜라니가 훨씬 무서운 여자 아닌가. 결국 병으로 죽어가는 멜라니는 스칼렛과 마지막 대면을 하면서 자신의 아들 보를 부탁한다. 스칼렛은 말도 사주고 세계여행도 시키고 하버드 대학도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그 후, 멜라니는 애쉴리를 스칼렛에게 부탁한다. "그이는 현실적이지 못해요." 오직 죽음만이 애쉴리에 대한 이러한 비판을 멜라니의 입에서 나오게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멜라니는 스칼렛의 사랑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랑을 자신의 생활 기반으로 삼았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점점 짙어진다. 살인도, 거짓말도, 도둑질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었던 멜라니 윌크스야말로 승자가 아닌가.

십여 년 전 장영희 교수와 '여자에게'라는 책의 공저자 인연으로 만나뵐 기회가 있었는데, 어렸을 적 당신이 번역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끼고 살았다는 것과 생활 때문에 대필 아르바이트를 고민하던 이야기를 흘깃 꺼냈더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너무나 초기 번역작이니 말도 꺼내지 말라. 그리고 자신의 문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대필 아르바이트는 될 수 있는 한 해서는 안 된다"라고 두 가지를 신신당부하신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자리를 먼저 일어났는데, 식당 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대필 아르바이트는 웬만하면 하지 마!" 하는 목소리가 쟁쟁 울렸다. 나는 결국 그 충고를 따랐지만, 문필업으로 생활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생활고와 싸울 때마다 심란하기 짝이 없다. 소설의 주인공은 스칼렛 오하라겠지만,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멜라니처럼 살 수 있을까. 과연 가능은 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