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제에 등장한 열일곱살의 작곡가

1977년 서울가요제에 앳된 17세 소녀가 등장했다. 그 소녀는 가수가 아닌 작곡자로서, 야무지게 악단을 지휘하고 있었다. 소녀의 자작곡은 이제 갓 스물이 된 진미령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이었고, 진미령의 데뷔 첫 무대였다. 그리고 '소녀와 가로등'은 그 해 서울가요제에서 '작사/작곡상'을 수상했고, 십대의 앳된 작곡자는 다름 아닌 장덕이었다.

'예정된 시간을 위해'

2월 즈음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떠오르는 가수가 있다. 1990년 2월 이후 영원히 29살에 머물게 된 장덕이다. 장덕이 세상을 떠난 90년은 내 나이가 꽤 어릴 때였다. 그래서 장덕이라는 가수가 우리 가요계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당시 거의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따금씩 그녀가 떠오른 걸까. 아무래도 장덕이 남긴 마지막 노래 때문인 것 같다. 그 어린 나이에 괜히 좋았던 그 노래는 '예정된 시간을 위해'였다.

어쩌다 라디오에서 '예정된 시간을 위해'가 흘러 나오면 나도 모르게 주파수를 고정하고 가만히 듣곤 했다. 그러다가 테이프에 녹음도 했었을 거다. 장덕 노래인지는 잘 몰랐다. 노래가 슬퍼서, 혹은 감동적이어서 들었다기 보다는 그 당시 일반적으로 인기 있었던 가요들과는 좀 다르게 멜로디가 세련됐다고 느낀 것 같다. 장덕이라는 가수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건 훗날 기사나 자료를 찾아보면서부터다.

불행했던 가정사, 서로 의지한 오누이

1961년생인 장덕은 음악가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부모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아서 장덕이 9세 때 이혼을 했다. 지금이야 이혼이 흔하다지만 70년대 대한민국에서 부모의 이혼이라는 현실이 어린 아이에게는 녹록지 않은 환경이었나 보다. 여러 자료를 보니, 장덕은 부모님의 불화 때문에 10대 시절 내내 안정된 생활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살 시도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하니 장덕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던 모양이다.

장덕의 음악적 천재성은 불행했던 가정사로 말미암은 탓일 테다. 이 어린 아이에게 계속된 불안과 불행은 음악적 감수성과 천재성을 배가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니 아이러니다.

'현이와 덕이'

장덕에게는 오빠 장현이 있었고 비록 동생만큼 빼어난 '송 라이터'는 아니었지만 그도 훌륭한 음악인이었다. 방황하는 장덕을 위해 어머니는 남매 듀엣을 결성해주었고 미 8군 무대에서 데뷔했다. 거의 최초라고 할 만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탄생이었다. 1977년 서울가요제에서 등장해 화제를 불러온 시기가 바로 이 즈음이었다. 예쁘장한 외모의 천재 소녀는 높아진 인기에 힘입어 솔로로 독립하기도 했으나 부친의 재혼 등 계속되는 부모와의 갈등이 악화되고 장덕의 불안한 일상은 계속 이어졌다.

'현이와 덕이' 그리고 솔로가수로서 성공

급기야 어머니가 장덕을 미국으로 불러들인다. 1979년 장덕은 미국 LA로 떠났고 이 시기에 짧은 결혼생활을 했다고 알려졌다(1981년 결혼). 결혼한 지 2년만에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장덕은 재기하지 못하고 방황했지만 다행히 오빠 장현이 손 내밀어 '현이와 덕이' 남매 듀오를 재결성한다. 이 때 발표된 음악이 지금도 익숙한 '나 너 좋아해, 너 나 좋아해'였다.

이 시기는 장덕의 음악이 대중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때였다.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장덕이 직접 부른 '님 떠난 후'는 당시 KBS '가요톱텐'에서 골든컵(5주 연속 1위)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는 다소 거칠고 촌스럽다고 느껴졌던 이은하의 창법을 바꿔준 곡이다. 이은하가 애절한 이별의 감성을 잘 표현해내는, 노래 잘 하는 여가수였음을 대중에게 다시 알린 것이다.

예정된 이별이었을까

장덕은 왜 약물 과다복용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까.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투병할 때 곁에서 간호했던 장덕이 무척 힘들어했었다는 게 보통의 추측이다. 부모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오누이는 서로를 많이 챙겼으니 말이다.

장덕의 죽음을 자살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그녀는 수면제·감기약 등을 한꺼번에 복용, 약물 과다로 인한 쇼크로 사망했다. 오빠의 암을 간호하다 불면증이 생겨 수면제를 과다 복용했기 때문이라는 객관적 사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일생을 통틀어 그녀를 괴롭힌 애정결핍과 외로움을 알면 알수록 그녀의 노래 제목처럼 장덕의 뜻밖의 비보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예정'돼 있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우리는 어렵게 만난 훌륭한 여성 음악인을 이토록 짧게나마 만날 수 있었음에 오히려 안도해야 하는 걸까. 장덕이 이 세상을 떠난 일은 황망하거나 슬프다기 보다, 그저 아깝다. 조금만 더 살아줬으면…

얼렁뚱땅 새해 첫달을 보내고 두번째 달마저 다 지나버린 지금, 이 어수선한 2월의 막바지에 짬을 내어 그녀의 노래를 듣는다.

[김성재는 지금도 천국에서 춤을 추고 있을까… 듀스(DEUX)의 음악을 다시 들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