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뷰티 살롱, 초등학생 화장 동영상 등 인기
어린이용 화장품 매출 매년 증가세, 유아용 립스틱 549% 증가
어른 옷 축소한 미니미 룩도 '어덜키즈' 문화… 과하면 인지적 발달 저해할 수 있어

마사지와 화장, 네일 아트 등을 제공하는 키즈 뷰티 살롱이 확산되고 있다.

“화장을 과하게 하는 언니들은 아이섀도우나 아이라이너, 마스카라까지 진하게 하고, 보통은 틴트, 노세범, 선크림을 기본적으로 써요.”

유튜브 영상에 등장한 한 초등학생의 입에서 화장품 용어가 술술 나왔다. “유분기를 잡기 위해 미네랄 팩트를 쓴다”는 꿀팁부터 “오렌지 색이 안 어울려 빨간색 립 제품을 바른다”는 퍼스널 컬러에 대한 설명까지,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아이는 화장을 하는 것이 꽤 익숙해 보였다.

초등학생의 화장은 이제 놀랄 일이 아니다. 지난해 녹색소비자연대 조사에서 초등학교 여학생 42.7%가 색조 화장을 한다고 답했다. 시장의 성장을 나타내는 지표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에 따르면 어린이용 화장품 매출은 2015년 94%, 2016년 251%, 작년 29% 증가했다. 연령대도 낮아져 유아용 립스틱은 전년 대비 549% 증가했고, 유아용 매니큐어와 메이크업 박스는 각각 233%, 101% 뛰었다. 이처럼 어른처럼 화장하고 꾸미는 '어덜키즈(Adult + Kids)' 문화는 하나의 흐름이 됐다.

◇ 색조 화장하는 초등학생… 미디어, 인터넷 영향으로 연령대 낮아져

‘어덜키즈’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미용 분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고등학생들에게 국한됐던 청소년 색조 화장은 이제 초등학생과 미취학 아동까지 확대됐다. 화장을 해볼 수 있는 어린이용 메이크업 박스도 인기다. 성인처럼 마사지와 화장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키즈 뷰티 살롱도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유튜버 예또의 초등학생 메이크업 영상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 ‘초딩 메이크업’ 영상을 찾으면 2만6700여 개의 콘텐츠가 검색된다. 성인부터 어린이까지 영상을 만든 연령층도 다양하다. 초등학생 화장 영상을 선보인 뷰티 크리에이터 예또는 “아이들이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화장법을 습득하면서, 화장을 시작하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아이들이 화장하는 걸 말릴 수 없다면, 나이에 맞는 화장법을 알려주는 게 좋을 거 같아 영상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두 편으로 나눠 제작된 이 영상은 지난해 9월 첫선을 보인 이래 현재까지 100만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영상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어른은 대체로 ‘피부에 안 좋으니 하지 마라’, 또래들은 ‘하고 싶으면 하라’는 반응. 한 초등학생은 “스마트폰에 ‘화해(화장품 정보제공)’ 앱을 깔아 후기를 보고 제품이 괜찮은지를 확인하고 구매한다”며 “‘바르지마’, ‘나중에 후회해’ 같은 말보다 아이들이 믿고 좋은 제품을 살 방법이나, 바르는 법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어린이가 엄마나 아빠의 흉내를 내는 건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 중 하나다. 여성이라면 어린 시절 엄마의 립스틱을 몰래 바르거나, 큼직한 옷을 입어본 경험이 있을 터. 문제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용해 어른의 문화를 모방하는 것을 부추기거나 상업화하는 분위기가 과열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덜키즈’ 문화는 아이 중심이 아닌, 어른처럼 꾸며 주는 것을 즐기는 어른의 그릇된 욕망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어덜키즈’ 문화가 퍼진 최근 몇 년 사이, 시중엔 어린이용 색조 화장품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다. 안정성이 의심되는 화장품도 적발됐다. 어린이 화장품 시장이 급증하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어린이용 제품류’를 화장품 유형 분류에 추가할 것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를 보류하고 관리 강화방안을 마련해 오는 7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 진한 화장에 어른처럼 꾸민 아이들… ‘어덜키즈’는 어른의 그릇된 욕망?

패션계에 부는 ‘미니미 룩(Mini-Me Look·아이에게 성인복의 축소판 의류를 입히는 스타일) 트렌드도 ‘어덜키즈’ 문화의 일종이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엄마들을 중심으로 아이에게 자신과 비슷한 옷을 입히려는 요구가 커지면서, 명품과 SPA 브랜드 등 성인 브랜드 대부분이 미니미 룩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아동복 쇼핑몰들이 선보인 수영복 화보, 몸매를 강조한 포즈가 어른의 섹시 화보를 보는 듯하다.

성인의 유행을 따르다 보니 패션 화보도 성숙해졌다. 아동복을 취급하는 한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자 7~8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걸그룹처럼 진한 화장을 하고 멍하게 카메라를 응시한 사진이 보인다. 모델의 나이만 어려졌을 뿐 어른의 패션 화보와 다를 바 없다. 많은 쇼핑몰이 이런 이미지를 사용한다. 지난해 한 아동복 쇼핑몰은 성인 화보 같은 낯 뜨거운 어린이 수영복 화보를 선보여 아동 성 상품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A 아동복 쇼핑몰 운영자는 “이런 분위기를 내지 않으면 옷을 사지 않는다”며 “온라인 쇼핑몰은 이미지로 구매를 유도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일상 사진보다 패션잡지 화보 같은 이미지가 더 눈에 띈다”고 말했다. 조카를 쇼핑몰 모델로 세운다는 이 운영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다리를 삐딱하게 세우는 포즈를 시켜봤는데, 처음엔 어색해하더니 이젠 카메라만 봐도 제법 자세를 잡는다”며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6살 짜리 딸을 키우는 워킹맘 박호연 씨는 “흔히 ‘어덜키즈’를 어른 흉내내는 아이라 정의하는데, 실제론 ‘어른의 문화를 모방한 아이의 모습’에서 만족을 느끼는 어른의 욕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덜키즈’ 문화는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로 어른들의 문화가 아이들에게 쉽게 노출되면서 그 연령대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김수미 숙명여대 뷰티최고위 책임교수는 “‘어덜키즈’는 이제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다. 어린이들이 색조 화장을 하고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을 문제 삼기보다, 오남용하지 않고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