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영국을 방문해 테리사 메이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 장소가 이례적이었다. 런던 서부의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 이유가 있었다. 양국의 군사 협력 강화가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두 정상은 2020년까지 최대 1만명 규모의 양국 공동군을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해 배치하기로 했다. 유사시 함께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수준으로 동맹을 강화하자는 약속도 했다.

유럽에는 각국 방위를 위한 나토(NA 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있다. 그런데도 나토와 별개의 '유럽군' 구축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 우산에서 벗어나 EU가 군사적으로 자립하겠다는 시도다. 지난해 12월 EU는 28개 회원국 중 25개국이 모여 '항구적 안보 협력 체제(PESCO)'를 출범시켰다. 각국이 국방 예산의 2%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20%를 군수 물품 조달에 쓰기로 했다. 나라별로 제각각인 무기 체계를 통합하기로 했다. 차세대 탱크나 신형 전투기도 공동 개발하자고 의기투합했다. 마크롱은 "유럽이 더 이상 느리고 유약해서는 안 된다. 공동의 군대가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U가 독자적인 방어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더 이상 미국 주도의 나토를 신뢰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나토는 총사령관을 미국이 맡고, 전체 방위비도 미국이 70%를 부담하는 미국 중심 군대다. 그런데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유럽 국가들이 나토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 미국이 값비싼 방어를 제공하고 있다"며 '안보 무임승차론'을 내세워 EU를 압박했다. 게다가 트럼프는 예전 미 대통령들과 달리 동맹국이 공격당하면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자동 개입한다는 나토 협약 5조를 지키겠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있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유럽 국가들은 유사시 도와줄지 불확실한 나토에 돈을 더 내느니, 자체군을 만들어 '군사 독립'을 이루는 편이 낫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노골적으로 서진(西進)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큰 위협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발트해에서 4년 만에 최대 규모의 병력인 10만명을 동원해 '자파드 2017'이란 군사 훈련을 실시해 EU를 긴장시켰다. 자파드란 서쪽이란 뜻의 러시아어다. 첨단 무기 도입도 서두른다. 러시아는 시속 400㎞ 이상 초고속 비행이 가능한 신형 공격용 헬기를 2019년까지, 사정거리가 미 육군 주력인 에이브럼스 전차의 2배에 가까운 신형 아르마타 전차를 2020년까지 배치 완료할 계획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도움 없는 유럽의 자체 국방력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허술하다. 지난 19일 로이터통신은 나토군 관계자를 인용해 "독일군의 주요 무기 시스템 가운데 40% 정도만 전시 작동이 가능하다"고 보도해 충격을 안겼다. 무용지물인 무기들이 많다는 얘기다.

따라서 유럽 국가들은 첨단 무기 개발을 통한 전력 증강을 위해 본격적으로 국방 예산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마크롱은 2025년까지 3000억유로(약 400조원)의 국방 예산을 집행하기로 했다. 그중 370억유로(약 50조원)가 핵무기 현대화에 투입된다. 독일 등 유럽 주요국들도 GDP 대비 국방비를 1%대 초중반에서 2%가량으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영국은 지난 연말 건조 비용만 4조5000억원을 들인 첨단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함을 진수시켰다. 독일은 프랑스와 공동으로 차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는 중이다.

EU에 국방비를 증대하라고 압박했던 미국도 유럽이 나토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자 태도를 바꿨다. 나토를 무력화시키려 든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고 있다. 케이티 휠바거 미 국방부 차관보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유럽이 나토에서 병력을 빼내 유럽에 투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칭 'EU 공동군'이 창설되기까지 과정은 험난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FT는 "유럽 공동의 군대가 오히려 군사적 긴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견제가 심해질 전망"이라며 "나토와 유럽의 독자적인 EU군이 공존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많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