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권위·개방적 리더십 vs 진보 판타지…변주되는 '웨스트윙'
날 것 그대로의 욕망 보여준 '하우스 오브 카드'
보통 사람이 정치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지정생존자'
정치 뉴스에는 '관계자'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백그라운드 브리핑(백브리핑)'에서 나온 얘기를 기자들이 이렇게 처리한다. 백브리핑이란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사람의 이름과 직책 등을 공개하지 않기로 상호 간에 암묵적으로 합의가 돼 있는 형식의 브리핑이다. 유력 정치인이 민감한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이나 뒷이야기 등을 백브리핑에서 듣게 된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치의 속살'을 궁금해 하는 대중들이 많아지고 있다. 정치 뉴스나 관련 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웰 메이드(well made)' 정치 드라마를 보는 것도 방법이다. 정치권에서는 수많은 정치 드라마 중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West Wing)'과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를 단연 최고로 친다. 그만큼 정치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과 그 아래 깔린 이기심과 욕망, 이상과 현실의 간극 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 노무현·문재인이 호평한 '웨스트 윙'…탈권위적인 소통 강조 두드러져
'웨스트 윙'은 2006년 종방됐지만 아직까지도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정치인들은 물론 언론, 학계 등은 웨스트 윙을 계속 호출해 우리 정치 현실을 진단하고 분석한다. 시즌 7까지 방영된 에피소드 중 상당히 많은 스토리가 우리 현실 정치와 겹쳐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의 스타일도 종종 드라마 속 주인공과 비교된다.
웨스트 윙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급하면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요즘은 웨스트 윙을 보면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역동적인 리더십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웨스트 윙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대선 투표 직전 연설에서 웨스트 윙을 언급하며 "'청와대 대통령 시대'를 끝내고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면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웨스트 윙을 보면 대통령이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화장실에 가면서도 복도에서 비서들을 만나 농담도 나누고 비서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에 들어가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깜짝 회의하는 모습이 나온다"며 "국정현안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을 그 때 그 때 비서들과 의논하고 소통하는 모습으로 지금 미국 민주주의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을 듣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웨스트 윙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뉴햄프셔 주지사를 지낸 민주당 제프 바틀렛 대통령의 8년 집권기를 그렸다. 비서실장(리오 멕게리), 비서실 차장(조쉬 라이먼), 공보수석(토비 지글러)과 공보차장(샘 시본), 백악관 대변인(CJ 크렉) 등 '독수리 5남매'가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과 비서진이 있는 백악관 서관(西館)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주로 그려진다.
웨스트 윙의 매력은 딱딱한 정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데 있다. 복잡한 국내 현안과 국제정세를 숨 가쁘게 얽어내면서도 소소한 인간사와 함께 버무려 일반 대중들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했다.
웨스트 윙이 '민주당의 백악관'을 그린 탓에, 공화당 지지자들은 "웨스트 윙이 아니라 레프트 윙(left wing)"이라고 부를 만큼 이 드라마를 싫어했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 정치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진보의 판타지'라는 지적도 있다. 권력을 다루지만 암투는 거의 나오지 않고, 모든 갈등이 논쟁을 통해 해결되고 논리적으로 맞다면 정적(政敵)의 요구도 받아들이는 모습이 자주 그려지기 때문이다.
◇ 오바마가 극찬한 '하우스 오브 카드'…비정한 권력의 속살 그대로 보여줘
'하우스 오브 카드'는 정책과 가치를 다룬 웨스트 윙과는 결이 다른 정치 드라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권력의 꼭짓점을 향해 달려가는 욕망의 정치인들이 벌이는 정쟁과 스캔들을 다룬다. 웨스트 윙이 정치인들이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공식적인 브리핑을 다룬 드라마라면 하우스 오브 카드는 정치인들이 무대 뒤에서 뒷배경을 설명하는 '백브리핑', 혹은 보도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속내를 털어놓는 '오프 더 레코드'를 주 재료로 사용한 드라마다.
'현실 정치를 있는 그대로 다뤘다'는 평을 받는 하우스 오브 카드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등 유력 정치인들이 광팬을 자처한다. 대중과 평단의 호평은 물론 전 세계의 유력 정치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드라마 기저에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인간 이기심과 성악설에 기반한 정치 드라마다. 권력욕으로 가득 찬 인간의 어두운 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정치는 희생을 필요로 하네. 물론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희생이지", "고통을 가할 거라면 감히 저항할 수 없는 크나큰 고통을 가해야 해. 그래야 네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되지" 같은 비정한 권력의 독백이 에피소드 전반에 흐른다.
드라마는 대통령의 야망을 품은 주인공 국회의원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가 권력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행보를 그린다. 주인공은 정치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성추문, 뒷거래까지 무기로 사용한다. 자본과 정치는 로비스트를 고리로 연결되고 언론과 정치는 특종보도를 매개로 유착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란 위태로운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시즌 1과 2에서 프랭크는 장관 자리를 약속받고 대통령의 당선을 돕지만 결국 배신 당한다. 하지만 그는 온갖 권모술수로 원내대표를 거쳐 부통령까지 오르며 자신의 입지를 되찾는다. 시즌 3에서는 대통령이 된 프랭크가 사방에서 공격을 받으며 위태롭게 국정을 이끄는 모습을 그린다. 시즌 5까지 방영됐다. 올해 방영 예정인 시즌 6로 종영될 예정이다.
재미있는 점은 프랭크가 웨스트윙의 주인공 바틀렛과 같은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이다. 바틀렛과 프랭크와 함께 우리 현실 정치를 비교해 본다면 재미와 함께 고민해 볼 거리도 찾을 수 있다.
◇ 보통 사람이 꿈꾸는 정치 드라마…'지정생존자' 최근 인기몰이
두 드라마 외에도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정치 드라마로는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를 꼽을 수 있다. 이 드라마는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 도중 가공할 폭탄테러가 발생,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이 사망·실종되면서 시작된다. 백악관은 불의의 사고가 발생해 참석자 전원이 유고가 되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연두교서 발표 자리에 장관 중 한 명을 행사에서 열외시킨다. 바로 지정생존자다. 지정생존자는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워싱턴 밖 은밀한 장소에서 대통령이 맡긴 '핵 코드 가방'을 갖고 대기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연두교서 발표 때 소니 퍼듀 농무장관을 지정생존자로 지명했다.
드라마에서 지정생존자로 살아남은 주인공, 톰 커크먼 주택 및 도시개발 장관은 졸지에 대통령직을 떠맡는다. 교수 출신의 존재감 없는 각료에서 일약 미 대통령이 된 커크먼은 수많은 난관과 도전을 헤쳐 가며 위기에 처한 미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신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고, 타협의 정치를 배우면서도 정의와 공정, 통합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기존 정치의 문법을 모르는 자가 오히려 기존 정치인들보다 더 헌법과 시민의 의무에 충실하면서 진정성 있는 정치를 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최근 유권자들이 바라는 정치의 상(想)을 잘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