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대 입시에서 영어 4등급(100점 만점에 60점) 학생이 정시 일반 전형에 합격한 것과 관련해 서울대가 고민에 빠졌다.

서울대는 올해 수능부터 영어가 처음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영어 변별력이 떨어질 것으로 판단해 영어 반영 비중을 대폭 줄였다. 등급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0.5점씩 감점해 1등급과 4등급 차이를 1.5점밖에 안 둔 것이다. 연세대(1·2등급 차이 5점), 고려대(1·2등급 1점차, 3등급부터 2점씩 하락)에 비해 영어 반영 비중이 크게 낮다. 이 때문에 영어는 4등급이지만 국어와 수학에서 1등급을 받은 A씨가 원자핵공학과에 합격하는 일이 가능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특정 과목 성적이 나쁘더라도 다른 과목에서 만회할 길이 열렸다는 의미"라면서 A씨의 합격을 긍정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서울대 내부에서조차 "영어는 대학 공부에서 매우 중요한데 4등급은 심하다. 영어 등급별 점수 차이를 높여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서울 지역 한 고교 진학지도부장도 "영어 4등급 합격자가 나온 것은 서울대가 입시제도를 안이하게 설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상당수 수업은 교재로 영어 원서를 쓴다. 특히 A씨가 합격한 원자핵공학과는 원서 교재가 전체의 53.1%로 공대에서 두 번째로 높다(이종배 의원실).

서울대 공대의 한 교수는 "서울대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떨어져 수업 진행이 어렵다고 느낄 때가 많다. 입시제도가 영어 실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거꾸로인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대가 매년 신입생들의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텝스(990점 만점) 성적은 떨어지는 추세다. 이 때문에 "영어 1등급이 전국적으로 5만명(전체 수험생의 10%) 넘는데 입학 정원 3300명인 서울대가 영어 4등급을 뽑을 필요가 있느냐"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대입 사전 예고제'에 따라 서울대는 2019학년도 대입 시행 계획을 이미 작년에 발표했고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곤 수정할 수 없다. 2020학년도 대입에서 영어 반영 비율을 높일지는 다음 달까지 결정해 발표해야 한다. 서울대 관계자는 "영어 절대평가 도입 2년 만에 영어 반영 비중을 높이면 '학습 부담이 늘어난다'는 얘기가 나올 게 뻔해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정명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입학지원실장은 "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입을 대폭 개편할 계획이기 때문에 서울대가 2021학년도 입시까지는 영어 반영 비중에 변화를 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