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예술단 공연을 보니 단순히 우리 노래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편곡부터 반주까지 모두 자기들 스타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가요를 많이 넣어서 자기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분위기였습니다. “
대표적인 국악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박범훈(70) 전 중앙대 총장은 8일 오후 8시부터 강원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의 축하공연을 직접 관람한 뒤 이같이 평가했다.
박 전 총장은 북한 예술단 공연에 대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잘 하는 경음악단의 공연을 본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연주자들이 ‘남조선 사람들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연습한 것을 (무대에서) 보여줬다”고 했다.
그는 “이번 예술단은 과거와 달리 모두 드레스를 입고, 우리 걸그룹 흉내도 일부 냈는데 북한에서 엄청난 변화가 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다만, 우리 가요 중심이어서 북한만의 고유한 색깔을 담은 음악 프로그램이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고 평했다.
국악관현악 대중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박 전 총장은 1986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주요 국가행사에서 개막식 음악감독을 맡았고, 1998년에는 한국 지휘자로는 처음으로 북한에서 열린 윤이상통일음악제에서 평양 국립교향악단의 '교향시 아리랑'을 지휘한 경험이 있다.
조선일보 디지털 편집국은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의 강릉 공연이 끝난 직후 박 전 총장과 전화인터뷰를 통해 북한 예술단 공연에 대해 물었다.
=북한 예술단 공연에 대해 전체적인 평을 해 달라
국민적인 관심이 높고, 보고 싶어 하는 분도 많았을 텐데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경음악단이 (북한에서) 내려왔다고 보면 된다. 이번 행사를 위해 열심히 연습했고, 그분들 표현대로 ‘남조선 사람들의 분위기’에 맞춰서 열심히 연습한 것을 (무대에서) 보여줬다. 경음악 연주는 잘했다. 원래 북한의 연주 실력이 좋다.
=공연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북한 연주자들이 아주 열심히 한다. 두시간 연주하는데 악보 넘기는 사람이 없었다. 지휘자 2명이 교대로 지휘하는데 지휘자부터 연주자까지 악보를 넘기는 것을 못 봤다. (악보를 모두 외울 만큼 ) 연습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1998년 평양에서 '교향시 아리랑'을 지휘할 때도 악보 넘기는 사람이 없다. 더구나 오늘은 경음악이라 노래 종류도 많고 합주곡인데 두 시간 동안 악보를 안 넘겼다는 것은 엄청나게 연습을 많이 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공연을 보고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번에 온 악단은 경음악단이다.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을 섞었는데 (남한) 대중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섭섭한 것은 북한에선 민요 같은 전통 음악이 전공하는 사람들만 보존하는 게 아니라 일반인이 생활 속에서도 즐길 만큼 생활화돼 있다. 그런데 그런 전통음악이 없었다. '쨍하고 해뜰 날' 같은 가요곡은 북한에서는 부르는 게 금지된 것으로 아는데 오늘은 우리 가요를 메들리로 편곡해서 불렀다. 그래서 아예 북한에서 잘하는 음악을 해줬으면 했는데 연주곡을 보니 굉장히 이쪽 분위기를 의식한 것 같았다. 북한의 특징적인 곡이 한 프로그램정도 들어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북한 악단만의 색깔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흘러간 노래, 경음악단 노래만 들어 좀 아쉽다.
-1998년 윤이상통일음악제 때 직접 지휘했던 공연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점이 있나?
그때는 연주자들이 한복을 입고 첼로를 연주했다. 민요를 첼로로 연주했다. 당시 ‘왜 한복을 입고 공연을 하냐’고 물었더니 ‘지금 우리는 이 좋은 악기를 우리 민족악기로 복종시키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 드레스를 입고, 야하게 옷을 입고 우리 걸그룹 흉내도 일부 냈다. 우리 쪽에서 보면 어설프지만 그쪽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온 것 같다.
이번 공연을 보니 북한이 단순히 우리 노래를 흉내내서 공연하려는 게 아니라 편곡에서부터 모두 자기네(북한 스타일로) 음악화했다. 코드·화음도 바꾸고 편곡도 좋았다. 특히 노래보다 반주음악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여하튼 이번 행사에서 자기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우리 가요를 많이 넣어서 우리를 축하해주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북한 예술단 공연 수준에 대해 평가한다면
오늘은 정말 한국의 경음악단을 봤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연주 잘하는 경음악단의 연주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같이 공연을 본 사람들이 “한국의 가요무대를 본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그럴듯했다. 그만큼 대중성 있게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