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선포한 ‘가상화폐와의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지난해부터 중국 내 거래소를 폐쇄하는 등 규제 강도를 높이던 중국 정부가 해외 가상화폐 거래사이트까지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5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산하 기관지 금융시보를 인용, “중국 정부가 금융위기를 우려해 가상화폐 거래 또는 가상화폐공개(ICO)와 관련된 국내외 웹사이트를 모두 차단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금융시보는 “중국 내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문을 닫은 뒤, 많은 투자자들이 해외 플랫폼으로 옮겨 가상화폐 거래를 계속했다. 일부 플랫폼은 장외거래 형식으로 거래를 중개하기도 했다”며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로써 중국 투자자들이 가상화폐 거래를 위해 이용하던 공식·비공식적 경로가 모두 막히게 됐다. 그동안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해외 사이트에 접근하던 중국 투자자들의 가상화폐 거래 활동에도 제약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SCMP는 전했다.
중국이 거래 중단, 거래소 폐쇄, 웹사이트 차단 등 규제 대책을 잇따라 내놓으며 가상화폐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앞서 지난해 9월 ICO를 금지하고 중국 내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채굴업체들의 “질서있는 퇴장”을 요구했다. 인민은행은 지난해 가상화폐 신규 계좌 개설을 금지하고 거래소 운영 중단에 나선 이후 지난달 가상화폐 거래를 위한 은행 서비스를 전면 금지했다.
그런가 하면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는 가상화폐 관련 광고를 없앴다. 중국 정부와 인민은행이 모든 가상화폐 거래사이트에 운영·폐쇄 조치를 내리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상화폐의 뿌리를 뽑으려는 중국 정부의 꿈이 현실이 되는 모습이다.
◇ 한때 가상화폐 열풍 주도하던 중국…과열 양상에 칼 빼들어
2013년까지만 해도 중국은 가상화폐가 태동하던 기회의 땅이었다. 당시 중국 내에서 거래되던 가상화폐 종류는 이미 6개를 넘었고, 거래소별 앱 다운로드 수는 매일 평균 4만 건에 달했다. 가상화폐 통계 사이트인 코인힐스에 따르면 중국은 한때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90%를 가까이 차지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도 가상화폐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중국 관영 방송 CCTV는 2013년 9월 중국이 세계 가상화폐 시장의 역사와 진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송했으며, CNN머니는 이를 두고 “중국이 가상화폐가 열 ‘멋진 신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열기가 과열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2013년 10월 가상화폐·무기 암시장 ‘실크로드’의 소유자 로스 윌리엄 울브리히트를 검거하면서 비트코인이 ‘범죄자들의 화폐’라는 오명을 얻은 것도 한몫 했다. 중국 정부는 결국 2013년 12월 가상화폐를 ‘진짜’ 화폐가 아니라 규정짓고, 금융기관의 관련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등 전보다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중국 정부는 당시 투자자들이 가상화폐의 위험요소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전제 하에 온라인 거래는 허락했다. 그러나 같은 달 바이두를 비롯한 온라인 결제 사이트가 가상화폐 결제를 중단하면서 그마저도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상화폐 시장이 가열됨에 따라 인민은행은 2014년 3월 시중 은행에 가상화폐 거래사이트 10여곳의 계좌 폐쇄를 지시했다. 사이트로 유입되는 돈줄을 차단해 자금 유입을 줄이려는 조치였다.
그러나 인민은행 등 관계 부처는 이후로도 몇 차례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 과열 현상을 경고했으나 명시적인 조치는 따로 취하지 않았다.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는 2014년 4월 가상화폐를 일종의 자산으로 묘사하며, 정부가 이를 금지할 계획은 전혀 검토하지 않다고 밝혔다.
◇ 초강경 규제에 설 자리 잃는 가상화폐…“디지털 법정화폐 발행 위한 초석”
하지만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규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가상화폐 관련 탈세·해킹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기 때문이다.
규제의 시작은 2017년 1월 인민은행이 BTC차이나·훠삐왕·오케이코인 등 중국 3대 거래소 조사에 나선 것이었다. 인민은행은 당시 이들 거래소 내부에 위험 통제 체계가 없다는 사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투자자들에게 그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경고했다. 거래소들은 인민은행으로부터 지적받은 사항을 보완하기 위해 착수했고, 이는 비트코인·라이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일시적인 거래 정지로 이어졌다.
이윽고 2017년 9월 중국 국무원 산하 인터넷금융위험판공실은 ICO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인민은행 등은 곧바로 신규 ICO를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ICO의 불법화로 사실상 자금 조달 수단이 끊기자 BTC차이나·훠삐왕·오케이코인 등 3대 거래소는 줄줄이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중국은 가상화폐 채굴에도 칼을 빼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관계 부처는 2017년 10월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작업을 중단하도록 관련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지도하라”는 내용의 공고를 지방에 고지했다. 가상화폐 채굴이 “전력을 대량으로 소비하고 투기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인민은행은 지난달 주요 은행에 보낸 내부 문건을 통해 “가상화폐 거래 관련 서비스 제공을 전면 금지한다”고 통보했다. SCMP는 해당 문건을 인용, 인민은행이 이들에게 “매일 거래 검사를 강화하고, 가상화폐 거래로 의심되는 사례가 발견되면 즉각 지급 경로를 차단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의 ‘가상화폐 소탕’이 자체 가상화폐를 발행하기 위한 초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황젠 중국 중앙재정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2017년 9월 ICO를 불법으로 규정할 당시 “(중국이 가능한 한 빨리) 중앙은행의 지원 하에 주권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민은행이 발행할 디지털 법정화폐는 비트코인 등 기존 가상화폐와는 달리 위안화와 같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차이나데일리는 2017년 10월 인민은행 산하 디지털화폐연구소가 미래 디지털 법정화폐 공급에 필요한 알고리즘 시운전을 완료하고 공급을 규제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도 설계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인민은행은 2017년 초 디지털 화폐 연구소를 설치한 데 이어 2017년 6월, 시중 은행과 시범적으로 디지털 화폐를 거래했다.
회계컨설팅업체 PwC차이나의 천인층 연구원은 “중국은 디지털 법정화폐와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취해왔다”며 “중국은 올해 세계 최초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발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