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TV조선의 시사 프로그램 'CSI: 소비자탐사대'가 서울 시내 5성급 호텔 세 곳의 객실 청소 실태를 보도했다. 하루 숙박비가 1인당 최소 20만~30만원인 '특급 호텔'이다. 제작진이 이틀간 객실에 머물며 카메라에 담은 모습은 특급 호텔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였다. 청소 직원은 수세미를 변기 물에 적셔 변기를 닦고, 그 수세미를 물에 헹구지도 않고 객실에 비치된 물컵을 씻는 데 사용했다. 소비자들은 "호텔들이 값비싼 장식품과 미술품으로 겉모습은 호화롭게 꾸미면서 정작 위생 문제는 눈에 잘 안 보인다고 신경을 안 쓴다"고 지적한다.
◇변기 닦던 수세미로 물컵 세척
첫 번째로 영상에 등장한 A호텔. 객실 직원이 변기에 고인 물에 수세미를 적셔 변기 안팎을 닦았다. 그 수세미에 세제만 조금 더 묻혀 컵을 닦았다. 이 컵은 투숙객이 물이나 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객실 내 비치된 것이다. 직원은 같은 수세미로 욕조를 청소했다. 컵의 물기는 투숙객이 사용한 뒤 바닥에 던져놓은 수건으로 닦았다. 변기와 컵, 욕조를 닦으면서 수세미는 한 번도 물에 헹구지 않았다. 객실 청소가 끝난 뒤 제작진이 오염도 측정기로 객실 안 소파의 오염도를 측정해 보니 안전기준치의 15배를 초과한 수치였다.
B호텔과 C호텔 상황도 비슷했다. B호텔의 직원은 카트에서 이미 사용한 듯한 수건을 꺼내 화장실 세면대와 욕조를 닦았다. 같은 수건으로 변기 안과 화장실 바닥까지 닦은 뒤 청소를 끝냈다. C호텔에선 투숙객이 사용한 베갯잇을 몇 차례 툭툭 털고선 갈지 않고 그대로 놔뒀다. A호텔과 마찬가지로 변기를 닦은 수세미로 세면대, 컵을 모두 닦았다.
◇특급 호텔에서도 무너진 직업윤리
호텔들은 모두 청소 매뉴얼을 갖고 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침대 정리와 화장실 청소, 물컵 설거지 때 사용하는 장갑의 색깔을 구분해 지급한다. 걸레와 수세미도 용도에 따라 구분해 준다. 이것이 청소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는다. 보통 직원 1명이 하루 청소하는 객실은 15개 안팎. 근무시간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9시간이다. 매뉴얼대로 청소하면 객실 1개에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특급 호텔 청소 직원은 대부분 하도급 업체를 통해 고용돼 있다. 기본급 170만~180만원을 받고, 담당하는 객실이 많으면 더 받는 식이다. 더 벌기 위해 배당된 것보다 4~5개의 객실을 더 청소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오버룸'이라고 불린다. 한 전직 호텔 직원은 "양심 지켜가면서 일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기본적인 직업윤리가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청소 직원들은 "시간에 쫓기다 보니 장갑과 걸레를 교체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서울의 한 5성급 호텔에서 일했던 여성은 "처음엔 교육받은 대로 철저히 위생 관념을 지키지만, 시간이 지나면 빨리 치우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고 했다.
◇위생 점검도 제대로 안 돼
이번 보도를 접한 소비자들은 공분하고 있다. 5일 문제가 된 한 호텔을 찾은 이모(여·65)씨는 "일류 호텔 위생 상태가 이 모양인데 도대체 어디를 갈 수 있겠느냐"고 했다. 다른 한 호텔에 묵었다는 50대 여성은 "외국 지인들이 한국 오면 추천했던 곳인데 실망스럽다"고 했다.
서울시는 위생 불량 적발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선찬 서울시 생활보건과장은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시청에서 각 구청에 지시해 숙박업소의 위생을 점검하고 있지만, 소독이나 침구류 세탁 등 일부에 대해서만 명확한 규정이 있다"며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지 않는 이상 청소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적발하기 어렵다"고 했다.
문제가 된 한 호텔 측은 "최근 서울 시내 특급 호텔 수가 늘면서 숙련이 덜 된 직원이 많이 채용되고 있다"며 "직원들이 청소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했다. 또 다른 호텔 관계자는 "하도급 업체 소속이라 직접 근로 감독을 하면 현행법 위반이라 어려움이 있다"며 "앞으로는 점검 횟수를 늘리는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호텔의 가격과 브랜드는 서비스의 질과 연결돼야 한다. 외양을 꾸미는 데만 치중해서는 특급 호텔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