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쓰는 게 아니라 뽑는 것이었다.

서울 용산 독립서점 고요서사에 가면 이른바 '문장 뽑기' 기계를 볼 수 있다. 문방구 앞에 흔히 있는 뽑기 기계로,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문장 캡슐'이 나온다. 캡슐을 열면 아침·점심·저녁용 약 봉투가 있고, 그 안에 짧은 문장이 적힌 종이가 담겨 있다. 종이에 적힌 문장은 소설가 김애란, 시인 이원부터 영국 소설가 존 버거까지 국내외를 아우른다. 주인 차경희(34)씨는 "책과 서점이 어색한 분들에게 흥미로운 코너를 마련해주고 싶었다"면서 "우연히 발견하는 문장의 재미와 추천 도서를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문장이 적힌 종이는 일종의 쿠폰처럼 책 구매 시 1000원 할인 혜택을 준다.

캡슐에서 나온 문장들. 최진영 소설‘해가 지는 곳으로’의 문장이 실려 있다.

책 안 읽는 시대, 독자에게 문장을 건네려는 간절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연남동 서점 데메테르북스가 지난해 9월부터 문장 뽑기를 비치하고 윤동주·괴테 등의 짧은 시를 넣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 주인 이수인(38)씨는 "책을 고르는 독자에게 포춘 쿠키를 맛보는 기분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 서울 대학로에 생긴 '헌책 자판기'도 이런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5000원 지폐를 넣으면 예쁘게 포장된 헌책이 무작위로 나오는데, 책과의 거리감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문학자판기'도 들어섰다. 지난 29일 경기도 파주시청은 경의중앙선 전철 '독서바람열차'에 문학자판기 한 대를 놨다. 높이 1m 정도 크기의 이 자판기는 '긴 글'(500자 이상) 혹은 '짧은 글' 버튼을 누르면 영수증 종이에 무라카미 하루키·오르한 파무크 등 유명 작가의 시·소설·수필 1000종 중 하나가 인쇄돼 나온다. 문장은 매달 120개씩 업데이트된다. 파주시 관계자는 "책 읽는 시민이 점차 줄면서 출퇴근길에 짧은 문장이라도 눈에 담아가길 바라고 시작한 기획"이라고 말했다.

문학자판기는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 지하철역 등에 설치되며 해외에서 먼저 등장했고, 국내에도 확산되려는 추세다. 지난 24일에는 경기도 용인시가 시청 로비와 용인경전철 기흥·동백·에버랜드역 등 네 곳에 문학자판기를 설치했다. 강원도 강릉·경북 울진·전북 익산 등에도 설치될 예정이다. 문학자판기 제작사 구일도시 전희재 대표는 "독서의 동기 부여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한 문장을 읽는 게 중요하다"면서 "공원·병원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위주로 자판기 설치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