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형 공기청정기를 생산하는 기업은 많지만 소형 공기청정기는 생산하는 곳은 많지 않은 일종의 틈새시장이다. 소형 공기청정기 시장을 목표로 삼은 클레어는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최근 미국·중국·일본에서 20억원의 규모의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했다. 한국을 포함한 4개국에서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국내 중소벤처기업은 클레어가 처음이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은 대중을 의미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의미하는 펀딩(Funding)의 합성어다. 온라인을 이용해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초기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적극 활용해 소셜 펀딩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우헌 클레어 대표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새로운 사업에 진출했다. 2002년 설립된 클레어(당시 ATNS)는 2002년 IT컨설팅 서비스로 호황을 누렸다. 이 대표는 컨설팅을 위해 제조업체들을 방문하던 중 제조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회사 창업 10년만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조업에 도전했다.
이 대표는 제조업 도전의 첫 걸음으로 소형 공기청정기를 선택했다. 공기청정기는 시장 진입이 비교적 쉬울 뿐만 아니라 국내외 대기업들이 대형 제품에만 신경쓰면서 소형 제품은 많지 않았다. 그는 시중에 판매되는 거실용 대형 공기청정기로 집안 모든 공간을 정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침실이나 공부방, 차안에 둘 수 있는 소형 제품이 대형 제품의 보완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는 제조업에 진출한지 1년 6개월만인 2014년 2월 ‘클레어’라는 브랜드로 제품을 출시했다. 디자인과 기능에 신경을 쓴 제품인 만큼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디자인과 기능에만 치중한 탓에 ‘왜 이 제품을 만드는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스토리(이야기)를 전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 결과 첫 제품은 겉만 번지르르한 제품이라는 인식과 함께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져 갔다.
하지만 이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품을 포기하는 대신 그 제품들을 바라보면서 문제점을 찾기 시작했다. 오기도 작용했다.
2015년 11월. 이 대표는 텀블러처럼 생긴 휴대용 공기 청정기를 들고 미국의 대표적인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 ‘킥스타터’를 방문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걸어다니면서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가 있고, 공기도 휴대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표의 전략은 주효했다. 사흘만에 목표한 금액을 모두 모았다. 그리고 미국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문도 기존보다 두 배 이상 많아졌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재미를 본 이후에도 꾸준히 펀딩에 나섰다. 국내 와디즈와 중국 징동닷컴을 통해 다시 펀딩에 성공했고, 일본 마쿠아케 크라우드 펀딩까지 성공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4개 국가에서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최초의 국내 기업이 됐다.
이 대표는 "크라우드 펀딩 이전 수출 실적이 2억원에 불과했지만 펀딩 성공이 소문나면서 2016년에는 20억원, 2017년에는 50억원의 매출을 해외에서 올렸다"고 말했다. 클레어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72억원과 5억원 수준이다. 2016년 매출과 영업이익 43억원과 1억원보다 급증했다. 올해는 120억원의 매출이 무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클레어는 올해 '블루투스 스피커가 탑재된 공기청정기'로 킥스타터에서 펀딩에 나선다.
아래는 이우헌 대표와 일문 일답
-창업 배경과 공기청정기를 아이템으로 선정한 이유는.
“창업을 하기 전에는 LG-EDS시스템(현 LG CNS)과 미국 썬 마이크로 시스템즈(Sun Microsystems)에서 소프트웨어 개발과 시스템엔지니어링을 담당했다. 고객사의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구축 컨설팅을 수행하면서 제조·유통·장치 산업 등 다양한 산업군의 업무 프로세스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에 큰 매력을 느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기획하게 됐다. 생활의 필수품이 될 가능성이 높으면서, 다른 가전에 비해 기술 장벽이 높지 않아 쉽게 진입할 수 있고, IT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이템 위주로 시장조사를 했다. 그 결과 소형 공기청정기가 유망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사업 기획 후 1년 6개월 동안 개발 작업을 진행했고, 2014년 2월 클레어라는 소형 공기청정기 브랜드를 런칭했다.”
-클레어만의 차별화 전략은 무엇인가.
"대기업 제품과 경쟁하는 제품이 아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제품으로 포지셔닝 한 부분이 다른 기업의 전략과 다르다. 국내 대기업이나 외국산 제품처럼 거실에 놓는 중·대형 청정기가 아닌 침대 머리맡이나 책상 위, 자동차 안 등 생활 공간마다 놓고 사용할 수 있는 소형 공기청정기에 중점을 뒀다. 바로 옆에 두고 사용하는 소형 공기청정기가 갖춰야 할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 디자인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저소음에 소비 전력은 적으면서도 다양한 생활 환경에 어울릴 수 있는 디자인을 갖춘 클레어가 탄생했다."
-공기청정기의 생명은 필터 아닌가. 필터 기술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클레어는 오염물질 대부분이 극성을 갖는다는 점에 착안해 자체 개발한 'e2f 필터'를 사용한다. 오염된 실내 공기가 고분자 합성수지필름 양면에 +, - 극성을 가진 e2f 필터를 통과할 때 정전기 극성과 반대인 극성을 가진 오염물질이 필터에 달라붙는다. 이 같은 방식으로 기존 부직포 형태의 필터로는 포집하기 어려운 0.1㎛(마이크로 미터) 이하의 초미세먼지를 거를 수 있다. 무극성인 오염물질은 필터를 통과하면서 발생하는 유도정전기를 통해 걸러진다. 이 필터를 사용하면 알레르기 및 새집증후군 유발 물질을 99% 이상 제거하고, 황사나 담배 연기 등 인체에 해로운 물질도 모두 거를 수 있다. 지난해 국민을 유해성 공포로 몰아넣은 옥틸이소티아졸론(OIT)과 같은 화학물질 코팅을 사용하지 않아 인체에 무해하다."
-필터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도 연구개발을 진행했다던데.
"집진효율은 높이고 공기가 통과하는 압력 손실은 낮아지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 필요했다. 클레어의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필름에 형성된 엠보싱 크기와 높이, 간격에 대한 적정 수치를 파악하는 일부터 초미세먼지를 최적으로 집진할 수 있는 필름의 형태를 구현하는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이온화 장치를 이용해 필터의 효율을 높이고 성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공기청정기의 집진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온화 장치와 정전 방식의 필터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인데, 이온화 장치가 흡입된 먼지에 대전을 하고, 이렇게 대전된 먼지는 정전 필터와의 사이에 발생하는 강력한 정전기력에 의해 포집된다. 이온화 장치에서 발생된 이온이 필터의 정전기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성능 유지형 공기청정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은 휴대용 공기청정기 '클레어B'에 탑재됐다. 현재는 이 기술을 중대형 공기청정기에 적용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중국·일본·한국 4개국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최초의 기업이라고 들었다.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많은 중소기업들이 그렇듯 처음에는 전시회에 참여해 바이어를 대상으로 클레어의 기능적인 강점을 소개하는 데 전력을 다했지만 한계를 느꼈다. 우연히 해외 면세점에서 '킥스타터에서 펀딩 받았어요' 라고 쓰인 스티커를 보고 '투자받은 것이 이렇게 선전할 만큼 가치가 있나'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펀딩을 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준다는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우리도 제품의 기능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얘기들을 전달해보자'고 결심했다. 결과적으로 한·미·일·중 네 나라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받았는데 클레어가 국내 최초다. 크라우드펀딩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해외 판로 개척을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지난해 말 코트라에서 수여하는 '수출혁신기업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클레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지금까지는 제조 기반을 닦는 일에 집중했고, 이제는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제 처음 사업을 기획할 때 생각했던 방향대로 공기질을 측정하고, 측정된 데이터를 축적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공기 정화기술과 센싱 및 빅데이터 처리 기술을 접목하고자 한다. 계획한 로드맵을 모두 거치게 되면 클레어는 IAQ(실내공기질) 토털 솔루션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확신한다.”
-올해는 어떤 제품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계획 중인가.
“이번 제품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장착한 휴대용 공기청정기로 2015년 킥스타터 플랫폼에서 목표의 200%를 초과 달성한 ‘클레어 B’ 휴대용 공기청정기의 후속 모델이다. 미국 크라우드 펀딩 마케팅 대행사와 3개월간 사전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2월 20일 세계 최고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서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다.”
-상반기에 연다는 공기청정기 카페 '클레어 플레이스'는 어떤 곳인가.
"'커피 한잔을 마셔도 공기 좋은 곳에서, 책 한 권을 읽어도 공기 좋은 곳에서'. 클레어 플레이스가 추구하는 가치다. 클레어 플레이스는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체험 공간으로 클레어가 가진 공기 정화 기술과 측정기술 등을 접목해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에는 매장에서 호흡기 건강에 좋은 음료를 할인 판매할 예정이다."
- 2018년 계획이나 각오가 있다면.
“우선 클레어플레이스를 통해 클레어란 브랜드를 국내 고객에게 보다 친숙하게 만드는 방법을 통해 내수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해외 유통망을 확대하고 스위스의 글로벌 가전 기업으로 납품할 OEM(주문자 상표 부착생산) 제품을 개발해 수출 규모를 키울 방침이다. 학교·공공기관·매장 등을 위한 초대형 공기청정기를 개발해 B2B 시장을 개척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