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55개 아프리카 국가들의 모임인 아프리카연합(AU) 본부 건물을 지어준 뒤, 그 후 5년에 걸쳐 갖가지 정보를 해킹해온 사실이 확인됐다고 29일(현지 시각)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보도했다. AU와 중국은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르몽드는 익명의 AU 관계자들 증언을 인용해 AU 측이 해킹 사실을 확인하고도 '자금줄'인 중국에 공개적으로 항의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AU 본부는 중국이 건축비를 내고 시공까지 해준 건물이다. 중국 정부가 2억달러(약 2150억원)를 투자했고, 국영회사인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EC)가 시공을 맡아 2012년 완공한 초현대식 건축물이다.

르몽드는 중국이 이 건물을 지으면서 해킹 설비를 몰래 설치하고 지속적으로 건물 안 컴퓨터에 담긴 정보를 빼갔다고 폭로했다. 해킹은 매일 자정부터 오전 2시까지 두 시간가량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AU 측은 중국이 해킹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건물 내 IT(정보기술) 시스템을 모두 교체하면서 데이터를 관리하는 보안 수위를 대폭 높였다. 그 과정에서 건물 벽 안에도 소형 마이크가 설치돼 있는 것까지 찾아냈다고 한다.

아프리카 지식인들은 중국이 AU 본부 건물을 지어준다고 할 때부터 "중국이 아프리카를 집어삼키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이라며 비판했는데,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AU 기밀자료가 상하이에 있는 서버로 전송됐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폭로됐는데도 피해자인 AU 측은 중국에 대놓고 항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킹 사실을 AU 측이 알게 된 것은 1년 전이지만 그동안 쉬쉬해왔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올해 AU 의장국인 르완다의 폴 카가메 대통령은 "(해킹) 사실을 전혀 모른다"며 "중국이 정보 빼내기를 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중국을 두둔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AU는 공식 논평조차 거부했다.

AU가 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아프리카를 휘어잡고 있는 '차이나 머니'의 위력 때문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했다. 중국이 아프리카 투자를 늘리는 속도는 2000년대 들어 가히 폭발적이다. 대륙 전체에 걸친 중국의 투자금(누적 기준)은 2004년만 하더라도 10억달러 정도였지만 2016년에는 490억달러로 50배 가까이 늘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지난해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 기업이 1만개가 넘었으며, 이 기업들 임직원의 89%가 현지인으로서 중국이 아프리카에 엄청난 규모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은 철도, 항만, 고속도로와 같은 대형 인프라 사업에 거액을 투자하는 경향을 보인다. 장기적인 개발 수익을 얻는 것은 물론 아프리카의 물류 흐름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아프리카 인프라 사업에 대출을 가장 많이 해준 국가는 210억달러를 빌려준 중국이다. 2위인 프랑스(30억달러)의 7배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최근 들어 중국은 아프리카의 통신 인프라 장악도 노리고 있다. 맥킨지는 "중국의 화웨이와 ZTE 두 회사가 아프리카 통신 기반 시설의 대부분을 지었다"고 했다.

서방 선진국들을 제치고 중국이 아프리카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이유는 '내정 불간섭주의'를 천명하며 독재자들을 껴안아주기 때문이다. 서방 선진국들이 정치적 불안이나 종교적 이질감 등을 이유로 아프리카를 외면하는 틈새를 중국은 파고들었다. 시진핑 주석이 2015년 남아공에서 '중국―아프리카 회의'를 열어 600억달러(약 64조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할 때 45개국 정상이 찾아와 서로 시 주석에게 눈도장을 받으려는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이 거대한 자국 경제 규모를 지탱할 갖가지 천연자원을 아프리카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받기를 원하는 것도 아프리카에 공을 들이는 이유"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