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라나 포루하 지음, 이유영 옮김|부키|532쪽|1만8000원

“2013년 봄 애플의 CEO 팀 쿡은 170억 달러를 차입하기로 마음먹었다…당시 세계 최고의 기업 가치를 자랑하던 애플은 이미 은행에 무려 1450억 달러가 넘는 현금을 쌓아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돈을 빌리면서까지 자금을 마련하기로 한 까닭은, 이 방법이 은행 계좌에서 돈을 꺼내 오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업들은 금융업의 사고방식이 깊숙이 자리 잡았다. 마이크로소프트, 화이자 등 수많은 대기업이 금융 거래, 헤지, 조세 회피, 금융 서비스 판매 등 돈을 이리저리 굴리는 방법만으로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 어떤 항공사에서는 비행기 티켓을 판매하는 것보다 유가 등락 위험을 분산해 버는 돈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보기도 한다.

미국의 기업은 이제 기업이 아니라 금융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금융시장 내에서 수익을 추구하는 활동이 실물 경제의 번영에 이바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탐욕스러운 괴물이 되어 위험성을 증가시키고 연구개발과 같은 장기적 투자를 저해하고 있다.

이런 행태가 만연한 것은 오늘날의 경제 체제가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질병의 이름은 바로 ‘금융화(financialization)’다. 금융화란 금융과 금융적 사고방식이 기업과 경제의 모든 측면을 구석구석 지배하게 되어 버린 현상을 뜻한다. 금융은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지만, 지나치게 비대해진 금융은 경제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금융화라는 단어는 전도된 경제, 즉 ‘만드는 자(maker)’들이 ‘거저먹는 자(taker)’들에게 예속되어 버린 경제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여기서 ‘만드는 자’란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일군의 사람, 기업, 아이디어다. ‘거저먹는 자’는 고장 난 시장 시스템을 이용해 사회 전체보다는 자기 배를 불리는 이들을 말한다. 다수의 금융업자와 금융기관, CEO, 정치인, 규제 담당자 등이 거저먹는 자들의 범주에 들어간다.

파이낸셜 타임스와 CNN의 경제 분석가로 활동 중인 라나 포루하는 심층 취재와 월가 및 워싱턴 고위급 인사들과의 독점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업의 금융화 추세가 저성장과 임금 정체, 빈부격차 확대를 조장하고 경제적 미래를 위협하고 있음을 파헤친다. 로버트 맥나마라, 잭 웰치 같은 실존 인물과 시티그룹, 포드, 화이자 같은 기업에 얽힌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사례를 통해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이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 이유를 살핀다.

그는 이러한 추세를 뒤집는 것이 우리 모두의 중대 과제임을 알려주며, 그 해결책은 금융과 실물 경제, 즉 ‘거저먹는 자’와 만드는 자’ 사이의 힘이 균형을 되찾는 것임을 역설한다. 또 안전한 금융 시스템을 위한 규제 방안과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마땅한 몫의 세금을 내도록 만드는 세제 개혁, 일자리 증가를 이루어 낼 공공과 민간 부문의 협력 증진, 크고 작은 미국 기업들 내에 필요한 문화적 변화 등을 우리가 당장 시행해야 할 정책 아이디어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