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경남 밀양 세종병원에서 불이 나 대형 참사(慘事)가 발생한 가운데 큰 인명피해가 나오게 된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참사로 사망자 38명을 포함해 총 18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화재 참사를 키운 원인으로 ▲건축물 불법 개조 ▲환자 결박 ▲방화문 개방여부 ▲후착 소방차 발수 지연 ▲정전 후 비상발전기 가동유무 등을 꼽았다.
① '불법 건축물'이라 합선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세종병원은 건물을 불법으로 개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건 수사본부는 27일 "세종병원은 2006년 1층·4층·5층에 147㎡(약 44.5평) 규모의 불법 건축물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화재 발화 지점으로 지목된 환복 및 탕비실은 본래 건축 설계 도면에는 없었던 불법 건축물로 확인됐다. 불법 건축물 설치가 기존 전기 배선을 바꾸면서 전기적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불법 건축물이 '환자들의 대피에 장애요소가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수사본부는 각 층에서 건축 당시 설계 도면과 현재 건물 구조를 대조하는 등 불법 개조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수사본부는 탕비실 천장에 배선된 전선을 수거해 정밀감정한 뒤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수사본부 측은 “불법 건축물 설치가 발화 지점이었던 1층 탕비실 배선 문제에 합선 등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사 중”이라며 “불법 건축물이 환자 대피를 지연시켰는지도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② '푸는 데 최소 30초 걸렸다'는 환자 결박이 피해를 키웠다?
세종병원은 노인 환자들의 낙상이나 자해 등을 막기 위해 신체 일부를 침상에 묶는 이른바 '신체보호대'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환자가 생명유지 장치를 스스로 제거하는 등 환자 안전에 위해가 발생할 수 있어 그 환자의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신체를 묶을 필요가 있는 경우에 최소한의 시간만 신체 보호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다만 신체보호대는 응급상황에서 쉽게 풀 수 있거나 즉시 자를 수 있는 벙법으로 사용해야 한다고도 명시돼 있다. 또 환자에게 결박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해 동의를 구하고 치매 환자나 의식이 없는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수사본부는 사고 브리핑을 통해 “병원 근무 간호사 등을 상대로 확인한 결과, 결박환자는 모두 10여명으로 태권도 띠 등으로 묶여 있었다”며 “결박을 푸는 데는 한 30초에서 1분 정도가 걸렸고, 이 시간은 구조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라고 전했다. 화재 당시 현장에 투입된 소방대원들에 따르면 화재 당시 3층에서만 결박 환자가 18명이 있었다.
일부 소방대원들은 “한 쪽 손에는 링거(수액)가 꽂혀 있었고, 다른 손은 침상에 결박되어 있었다”며 “연기가 가득 차있는 상태에서 결박을 제거하느라, 구조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했다.
수사본부는 "신체보호대 사용 환자가 더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며 "결박 조치가 적절한 것이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환자 결박과 관련 병원 관계자들은 "수술환자가 무의식 중에 기도가 막힐 우려가 있거나 치매환자가 낙상할 우려가 있을 때 신체보호대를 사용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③ 방화문 열려 유독가스가 빨리 퍼져 피해를 키웠다?
화재 당시 2·3·5층의 방화문이 열려 있던 바람에 사상자가 늘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망자는 육안으로 사인을 확인하기 어려운 4명을 제외하고 모두 유독가스로 인한 질식사로 알려졌다.
방화문은 건물 내 화재가 발생했을 때 화염과 유독가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비상통로 출입구 등에 설치하는 문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피난 경로를 화재의 영향으로부터 막아준다. 최근 만들어지는 건축물에는 화재경보기가 작동될 때 자동적으로 방화문이 닫히도록 하고 있다. 이전에 설치된 방화문은 평소 닫아 두어야 한다.
불이 난 세종병원 응급실 등 1층에는 방화문이 없었다. 2·3·5층(5층이 실제로는 4층)의 각 양쪽 비상출입구에는 방화문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2·3·5층의 방화문의 개폐여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화재 당시 방화문이 열려있었다면 연기가 급속도로 위층으로 퍼지게 된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최만우 밀양소방서장은 “소방대원이 화재 현장에 들어갔을 때 일부 층에 방화문이 열려 있었다고 한다”면서 “다른 구조대원이 구조 작업 중 방화문을 연 것인지, 평소에도 열려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④ 소방차 발수 지연?
세종병원 화재 당시 두 번째 도착한 소방차의 소화기에서 2분 46초간 물이 나오지 않아 화재 초기 진압에 차질을 빚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밀양소방서는 26일 화재 당시 현장에 도착한 두 번째 소방차가 불이 난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면서 “선착대가 3분만에 도착하고 후착대가 3분 뒤 현장 도착했지만 2분 46초간 물을 내지 못했다”면서 “다만 SOP(긴급행동지침)에 따라 현장 지휘관이 화재 진압보다 인명구조를 먼저 진행했다”고 했다.
소방차가 물을 뿌리지 못한 이유는 소방차의 ‘성능’문제라고 소방측은 말했다. 최 서장은 “(소방차 살수 기능에) 문제가 있어서 물을 늦게 뿌린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박해영 소방청 대변인은 “차량 성능마다 물이 나오는 속도가 다르다”고 했다.
이와 관련, 취재진이 출동한 소방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 영상공개를 요청한 상태. 그러나 소방서 측은 “소방차량 영상장치 목적은 소방활동 정보 파악으로 본래 목적과 다르게 (불가피하게) 시민 신상도 담겨 있다”며 “개인정보 보호법, 공공기관 정보에 관한 법률 등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⑤ 정전 후 비상발전기, 가동 안 됐다? 못 했다?
세종병원 화재 당시 엘리베이터에서만 6명이 숨졌다. 화재 발생 후 환자들이 엘리베이터로 몰렸으나 정전으로 정지하는 바람에 질식으로 숨진 것이다. 또 응급실이나 병실에서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있던 환자들은 전기가 끊어져 기기 작동이 멈추면서 상태가 악화됐을 수 있다는 의혹도 있다.
최치훈 경남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비상용 발전기는 정전 때 자동으로 가동되는 모델과 사람이 직접 조작해야 하는 수동 제품이 있는데, 세종병원은 수동 제품”이라며 “감식 결과 병원 뒤쪽에 있던 비상용 발전기에 수동작동 흔적이 없는 만큼 가동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