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2월 11일, 혹한이 몰아치는 런던의 낡은 아파트에서 가스 오븐과 이어진 가스 밸브를 틀고 한 미국 여성이 자살했다. 그날은 불운이 겹쳤다. 파출부가 제 시각에만 왔더라도 자살은 실패했을 텐데, 파출부는 그날따라 늦게 도착했다.

남편 외도에 절망한 실비아 플라스(1932~1963)는 자기 살해라는 방식으로 생을 끝냈다. 1980년대 초 비평가 알바레스가 쓴 '자살의 연구'라는 책을 통해 나는 실비아 플라스라는 시인을 알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여성 시인의 시집을 내가 경영하던 출판사에서 국내 처음 번역·소개했다.

아버지는 보스턴 대학교 생물학과 교수이고, 어머니는 영문학과 독문학을 전공한 지식인이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여덟 살 때 '보스턴 헤럴드'에 시(詩)를 발표하고, 10대에 시와 단편소설을 잡지에 발표할 만큼 천재성을 뽐냈지만, 일찍 죽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품고 있었다.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젠 끝났어"('대디')라는 시 구절은 분노를 그대로 드러낸다.

명문 스미스 여자대학에 수석 입학을 하고 내내 우등생이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런던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시인 테드 휴즈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녀는 요리사, 엄마, 남편 비서 역할을 수행했다. 두 아이를 거두며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다. 실비아 플라스가 잡지사와 출판사에 보낸 원고는 번번이 되돌아왔지만 테드 휴즈는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1962년 10월, 실비아 플라스는 이혼을 앞두고 한 달 만에 30편의 시를 완성했다. 광기에 휩싸여 "뼈와 섬유조직까지 강해져야" 한다고 자기를 다그치며 시를 썼다.

31세에 돌연 자살을 선택한 뒤 불길한 운명과 가부장적 질서에 저항했던 실비아 플라스의 시는 단박에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잇달아 시집 세 권이 나오더니, 이윽고 1981년 테드 휴즈가 정리한 '시 전집'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