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미국 공영라디오 NPR이 제작해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 '한국 민요록 밴드'를 자처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름은 '씽씽(SsingSsing)'. 리드보컬 이희문(42)을 중심으로 소리꾼 추다혜와 신승태, 장영규(베이스), 이태원(기타), 이철희(드럼)로 구성된 이들은 15분 동안 '베틀가' '사설난봉가' '자진난봉가'를 선보였다. 블루스부터 테크노, 디스코 등 다양한 반주에, 익숙한 우리 민요가락을 얹었다. 빨간색 아프로헤어와 드래그 퀸(drag queen·여장 남자)까지 패션도 현란했다. 외국인들은 "한국 민요가 스카(자메이카 리듬)였었나?" 같은 댓글을 달며 호응했고 한국인들도 "이게 진짜 국악이냐"며 조회수 100만을 가뿐히 넘겼다. '타이니데스크(Tiny Desk) 콘서트'라는 이름의 이 NPR 공연은 '힙한 요즘 음악'을 소개하는 인기 코너다.
2월 4일 서울 서교동 무브홀에서 첫 단독공연을 여는 씽씽의 리드보컬 이희문을 지난 13일 만났다. 그는 "공연 때마다 초대권을 뿌려대도 관객석이 비었었는데 NPR 영상 나간 후엔 공연마다 10분 만에 매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일과 무대는 파격적이지만 그는 무형문화재 57호인 경기민요 이수자다. 어머니 고주랑 명창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국악을 끼고 살았다. "어머니가 공연으로 집을 비우실 때마다 화장하고 한복 꺼내 입고 소리 부르곤 했어요."
다만 먼 길을 돌아 27세 늦은 나이에 국악에 정식 입문했다. "여성 국악인이 기생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죠. 아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으셨을 거예요." 중학교 때는 짝사랑하던 가수 민해경을 동경해 가수도 꿈꿔봤다. 일본에서 영상학을 공부한 뒤 뮤직비디오 조감독 생활도 했다. 그러다가 2003년 어머니와 동문수학한 이춘희 명창 권유로 다시 소리를 접했다. "취미 삼아 시작했는데 우연히 나간 대회에서 덜컥 2등을 했어요. 이쯤 되니 '내 길이다' 싶더라고요."
이후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한국남자'란 앨범을 내고, 경기민요 공연 '깊은 사랑'을 기획했다. 음악팬들의 열광과 함께 '국악계의 이단아'란 꼬리표가 붙었다. "경기민요를 부활시키고 싶어서 이런 길을 택했습니다. 영화 '서편제' 이후 남도소리는 많이 알지만 그전에는 경기민요가 더 유명했어요. 다만 '목 자랑'하는 장르다 보니 상대적으로 희극적 요소가 많이 사라졌죠. 그게 아쉬워서 되살려 보고 싶었습니다."
씽씽의 독특한 공연 모습도 예전부터 해오던 것이라고 했다. "2014년 기획한 경기민요 공연 '쾌'는 우리 전통음악 뿌리가 굿에 있다는 것이었어요. 박수무당처럼 여장하고 씽씽보다 더 파격적인 모습으로 춤추며 소리를 했죠. 씽씽 멤버들도 모두 그때 만났어요." 국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무대 오르기를 주저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힘이 돼준 사람은 안은미컴퍼니 예술감독 안은미였다. "'예술이라는 방패가 있는데 뭐가 무섭니'란 말씀을 듣고 힘을 많이 얻었어요. 저는 스스로 '안은미 둘째 아들'이라고 말하고 다녀요."
이희문은 '국악'이란 말이 우리 소리의 다양함을 한 단어에 매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음악은 장르마다 각각 이름이 있는데 우리 소리는 경기민요나 서도민요나 전부 '국악'이라고 하죠. 그래서 저는 '국악'이란 말을 싫어해요." 그가 지금 관심 갖는 음악은 일본의 엔카다. "경기민요와 소리가 굉장히 닮았거든요. 국악인이 일본 노래한다고 또 엄청 욕하시겠죠. 그래도 그런 스캔들에 계속 도전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