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戊戌年), 황금 개띠 해가 열린 지 벌써 석 주가 지났습니다. 여기저기 개에 관련된 얘기가 쏟아집니다. 저희 두 사람도 슬쩍 숟가락 올려 봅니다.

오누키(이하 오): 얼마 전 택시 탔는데 기사분이 혀 끌끌 차며 한마디 하시더군요. "개가 개님 됐구먼." 사람 다니는 병원도 모자라는데 24시간 동물병원이 여기저기 생긴다며 개가 상전이라고….

김미리(이하 김): 반려견 사랑이야 어제오늘 일은 아닌데 요즘 보면 말(言)에서도 개가 지위 격상된 것 같아요.

: 진짜 '개님'이라 부르나요?

: 하하. 그게 아니라 중2인 제 친구 딸하고 얘기하는데 대화가 '개'로 열려 '개'로 닫히더라고요. "잘 있었어?" "네 이모, 근데 개추워요!" "밥은 먹었고?" "떡볶이. 개맛있어요." "개 맛? 개 맛 나?" "아니, 개맛있다고. 개쩐다고. 근데, 이모 옷 개예뻐요."

: 뭔 말인지. 저는 도무지 독해 불가.

: 매우 춥고(개춥다), 정말 맛있고(개맛있다), 엄청 좋고(개쩐다), 진짜 예쁘다(개예쁘다)는 의미래요. 강조하고 싶을 때 '개'를 접두사처럼 자동으로 붙여 쓰는 거죠.

: 일본으로 따지면 초(超·'매우'를 뜻하는 접두사) 정도 되겠네요. 멧챠(めっちゃ), 야바이(ヤバイ) 같은 말을 강조의 의미로 붙이기도 하고요.

: 제 귀엔 개를 붙인 속어들이 좀 어색하게 들려요. 원래 '개―'라는 접두사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거든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선 '개―'를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예컨대 개꿀·개떡·개살구·개철쭉), '헛된' '쓸데없는'(개꿈·개수작·개죽음),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한'(개망나니·개잡놈)을 뜻하는 접두사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그런데 신세대에서 쓰는 '개―'엔 긍정의 의미가 담겨 있어요.

: 흥미롭네요. 개는 외국인들이 한국어 배울 때 필수 암기 단어이기도 해요. '개새×'라는 욕설 때문에요.

(오누키 특파원이 외친 세 음절 단어가 옆 테이블까지 흘러 들어갔다.)

: 헉, 오누키상 과감한데요? 공공장소에서 이렇게 또렷하게! 하하.

: 한국 남자들하고 말할 기회가 많은데 말끝마다 개새×를 달고 사는 분 많잖아요. 워낙 많이들 쓰기에 저도 모르게(웃음). 사실 한국 언론 보면서 그렇게 일상에선 많이 쓰면서 왜 기사엔 가위표하고, 방송에선 묵음처리 하는지 의아하기도 했어요.

: 한국말에 욕이 많다는 얘기는 하는데 직접 체감해 보니 어떤가요?

: 정말 다양하고 생생해요. 외국인은 도저히 마스터하기 힘든 영역 같달까. 그런데 역으로 일본 사는 한국 친구 중엔 일본어에 욕이 너무 없어 답답하단 친구도 있어요. 한국말로 하면 그렇게 넉살 좋고 호방한 친구가 일본말 할 땐 온순한 양이 되지요. 가끔 '바카야로(ばかやろう·바보 자식)'로 그나마 해소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거 아세요? 일본에선 그 단어 잘 안 쓰는 거.

: 심한 말인가요? 일본 대표 욕으로 알고 있는데.

: 저한테 농담 삼아 '나도 일본어 알아요' 하면서 '바카야로'라 하는 한국 사람이 정말 많거든요. 그 말 들으면 앞에선 웃지만 속으론 '구석기인도 아니고'라고 생각해요. 너무 오래된 단어라서요. 할아버지 세대에서나 쓸까. 요즘엔 거의 안 써요.

: 그나저나 왜 한국어에선 욕이 발달했을까요.

: 침략을 많이 받으면서 자연스레 내 편 네 편 가르게 된 문화가 언어에도 영향 미친 건 아닐까요. 내 편은 착한 사람, 네 편은 나쁜 놈. 늘 적이 있으니 욕이 발달한 게 아닐까 싶어요. 지금도 북한이 있잖아요.

: 설득력 있네요. 하여튼 올해는 바른 말 고운 말!

김미리·'friday' 섹션 팀장
오누키 도모코·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
(※한국과 일본의 닮은꼴 워킹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