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개·돼지...모유 수유 역겹다."
"멕시코 이민자들은 마약상, 성폭행범...남쪽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
"여자를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할 곳은 창녀촌밖에 없다."
"아이티 출신들은 모두 에이즈에 걸렸다."
"우리가 왜 아이티와 아프리카 같은 '똥통'에서 온 이 모든 사람들을 받아줘야 하나."
"왜 '예쁜 한국 여자'가 대북 협상 업무를 하지 않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취임 이후 지금까지 쏟아낸 말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은 발언들로 인해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로 낙인 찍혔다.
지난 2016년 11월 8일(현지시각) 치러진 제 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승리를 확정지은 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우리가 몰랐던 미국(Our Unknown Country)’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트럼프의 승리는 ‘앵그리 화이트(Angry White)’의 분노가 폭발한 결과라고 주장하며, 미국 사회의 앞날을 우려했다. 앵그리 화이트는 저학력·저소득인 블루칼라 백인을 이르는 말로, 이들은 여성·소수인종 우대 정책 등에 불만을 품고 있다.
이는 기우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주의’ ‘인종차별주의’ 정책과 언행은 미국 사회를 갈라놨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 ‘큐클럭스클랜(KKK)’, 반이슬람단체 등 미국 내 증오단체가 늘었고,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과 여성들을 겨냥한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는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유혈 충돌까지 벌어졌다.
◆ 크루그먼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트럼프 당선 뒤 미 전역 갈등
앞서 크루그먼 교수는 “(트럼프의 당선날은) 끔찍한 계시의 밤”이라며 “많은 백인들이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얼마나 깊은 분노를 품고 있는지 보여줬다. 우리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탄식했다.
이후 미국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대선 다음 날부터 미국 전역에서 ‘Not my president(나의 대통령이 아니다)’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반면, 미국의 일부 신(新)나치주의자들은 트럼프를 ‘최후의 구세주(the ultimate savior)’로 부르며 칭송했다고 허핑턴포스트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서도 갈등 상황이 연출됐다. 취임식 당일이었던 지난해 1월 20일 워싱턴 DC는 트럼프 지지파와 반대파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이어 21일에는 반(反)트럼프 시위인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이 벌어졌다. 워싱턴시 당국은 약 50만명이 행진에 참여했다고 추산했다.
◆ 1년 간 ‘반(反)이민 정책’ 쏟아낸 트럼프…미 ‘증오집단’ 급증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1월 20일 공식적으로 임기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를 시작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년 간 강력한 ‘반(反)이민 정책’을 추진해왔다.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과 관련한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불법 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DACA·다카) 폐지,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들의 ‘임시 보호 지위(TPS·Temporary Protected Status)’ 폐지 등을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사회의 갈등도 깊어졌다. 인권단체 남부빈곤법센터(SPLC)는 지난해 2월 발표한 2016년 연례보고서에서 미 연방수사국(FBI) 통계를 인용해 트럼프가 선거 운동을 시작한 2015년 이후 무슬림을 겨냥한 증오범죄가 67%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가 당선된 직후 열흘 만에 이민자와 무슬림을 노린 과격 단체들의 공격 횟수는 867건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2016년 미국에 존재한 ‘증오단체(hate groups)’는 917개로 집계됐다. KKK, 신나치, 반무슬림단체 등이 이에 포함된다. SPLC는 이 기록이 2011년 기록한 역대 최대치(1018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의 편집자인 마크 포톡은 “지난 2016년은 유례 없는 증오의 해였다”며 “백인 국수주의자들의 가치를 반영하는 대통령이 우리가 이뤄온 인류의 발전을 훼손했다”고 꼬집었다.
◆ 백인우월주의자·반대파 ‘유혈 충돌’까지…“트럼프의 민족주의 매우 우려”
곪디 곪은 갈등의 상처는 결국 터졌다. 지난해 8월 12일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유혈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KKK, 신나치 등 백인우월주의 집단은 전날부터 그들이 영웅으로 추대하는 로버트 E.리의 동상 철거를 반대하는 밤샘 시위를 벌였다. 이어 이들의 시위를 반대하는 집단이 맞불 집회를 개최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 백인우월주의자가 상대 집단의 행진 속으로 차를 몰고 돌진했다. 32세 여성 1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총 2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태를 두고 양쪽 모두에게 유혈 충돌의 책임이 있다고 발언해 논란을 키웠다. 이후 여론의 거센 비판이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인종주의가 사태의 원인이라고 정정했지만, 그를 향한 비난은 계속됐다.
폭탄 발언은 계속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11일 백악관에서 이민자 관련 정책을 논의하던 중 중남미 아이티, 엘살바도르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똥통(shithole)’이라고 불러 거센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수백명의 아이티 이민자들은 지난 15일 흑인 해방 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일(Martin Luther King Day)을 맞아 트럼프가 방문한 골프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소수의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이에 맞섰다고 AP는 전했다. 그들은 성조기를 들고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민자들에게 아이티로 떠나라고 외쳤다.
이같은 미국 사회의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 뉴욕 포드햄 대학 교수이자 차별 철폐 운동가인 마크 네이슨 교수는 “트럼프는 백인우월주의가 아니라 백인의 분노를 등에 업은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도 “불행하게도 트럼프는 민족주의를 재확인하면서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매우 우려스럽다”고 CNBC와 인터뷰에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