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국민 여가수의 명복을 빕니다.”
크랜베리스와 오랜 세월 작업해 온 영국 최고의 음반 제작자 스티븐 스트리트는 15일(현지시각) 아일랜드 록그룹 크랜베리스의 리더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이와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오리어던은 이날 녹음을 위해 영국 런던에 머물던 중 갑자기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년 46세로 사망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스트리트의 말처럼 오리어던은 특유의 허스키한 고음과 단단한 미성이 어우러진 창법, 그리고 호소력 넘치는 작곡 실력으로 아일랜드 록그룹 U2와 양대산맥을 이루며 크랜베리스를 국민밴드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한국에서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에서 크랜베리스의 대표곡 ‘Dream’으로 이름을 알렸고, 2002년에는 내한공연까지 치르며 한국인이 사랑하는 해외 뮤지션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자우림의 김윤아, 주주클럽 주다인 등 한국의 여성 가수들은 오리어던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 뛰어난 작곡 센스의 히트곡 제조기…유일무이한 독특한 목소리로 청중 압도
오리어던은 1990년 19살에 록밴드 크랜베리스에 보컬로 합류했다. 크랜베리스는 오리어던이 합류하기 전 1989년에 결성돼 '크랜베리가 보고 있다(the Cranberry Saw Us)'는 이름의 밴드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메인 보컬이 밴드를 떠나면서 오리어던을 영입했다.
당시 밴드를 찾고 있었던 오리어던은 밴드가 보내온 데모곡에 신선한 멜로디와 가사를 넣어 밴드에 보냈다. 노래를 들은 밴드는 그 자리에서 바로 오리어던을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오리어던이 크랜베리스의 멤버가 되기 전 데모곡으로 만든 이 곡은 크랜베리스를 세상에 처음 알린 ‘링거(Linger)’로 발표됐다. 발매 당시 이 곡은 24주간 미국 빌보드 차트 100위권에 머물렀다.
오리어던은 데뷔 초부터 뛰어난 작곡 및 작사 능력을 뽐내며 히트곡들을 뽑아냈다. '링거'에 이어 발매된 '드림스(Dreams)'는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큰 반응을 얻기는 못했으나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돼 공연 투어를 하면서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1995년 발매된 2집 앨범 'No Need to Argue'에 삽입된 곡 '좀비(Zombie)'도 오리어던의 작품으로 당시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폭탄테러로 인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쓴 곡이다.
그의 독특한 목소리와 창법도 팬들을 사로잡은 매력 요소로 꼽힌다. 뉴욕타임스는 오리어던의 목소리를 “고음의 숨소리가 섞인(high and breathy), 하지만 단호한(determined) 목소리”라고 묘사했다. 아일랜드 여가수 호이저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오리어던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더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락 장르에서 어떻게 저런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지는 목소리”라고 평가했다.
◆ 열정과 강한 리더십으로 팀 이끌었으나…번 아웃으로 팀 해체
밴드 안에서도 독보적인 실력과 홍일점이라는 지위 덕분에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했던 오리어던은 무대 위에서 화려한 삶을 누렸다. 오리어던을 오랜 세월 지켜봐온 음반 제작자 스티븐 스트리트는 오리어던이 무대 위에선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날 음악전문매체 롤링스톤지에 “첫 공연에서 돌로레스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무대 구석에서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돌로레스는 9개월 만에 무대 앞으로 당당하게 나가 관객들의 눈을 마주보며 ‘날 바라봐요.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스트리트는 “오리어던은 그 이후 수십년간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공연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마 돌로레스는 좀더 성질을 죽이고 신중하게 행동했을 수도 있었지만 그건 그녀의 방식이 아니었다”며 “그녀는 팀원들을 정신 바짝 차리게 하는 선동가였으며, 스튜디오에서 그녀의 노래로 밴드를 환상적인 조합으로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오리어던의 열정적인 리더십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집과 2집 앨범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쉴 틈 없는 공연 스케줄과 무리한 음반 작업 탓에 3집 앨범을 발매할 때쯤 밴드 전체가 번아웃(극도의 신체 및 정신적 피로감)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오리어던은 당시 아일랜드 매체 아이리시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휴식기를 가졌더라면 상황이 나아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우리는 매우 젊은 청년들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어 “2년 전속 계약을 체결할 당시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힘들지 상상조차 못했다”며 “우리는 끝장을 내보겠다고 매일 일에 매달렸고, 결국 나는 지칠대로 지쳐버렸다”고 덧붙였다.
◆ 순탄하지 않았던 사생활…이혼에 우울증까지
하지만 무대와 달리 오리어던의 사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오리어던은 22살이던 1994년 영국 그룹 듀란듀란의 투어 매니저 돈 버튼과 결혼했으나, 20년 후인 2014년 세명의 아이를 두고 결국 이혼했다.
건강에도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2003년 해체한 후 2009년 재결합한 크랜베리스는 2017년 새 앨범 ‘Something Else’를 발표하고 유럽과 미국 공연 투어에 나섰다. 하지만 오리어던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등 척추에서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때때로 오리어던의 건강 문제로 일정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겪고 있었다. 영국 매체 미러(Mirror)는 오리어던이 아버지와 의붓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이날 보도했다. 오리어던은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우울증을 겪었던 것 같다”며 “이후 아이들 덕분에 삶의 기쁨을 되찾았다. 살다보면 좋은일도 있고 나쁜일도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신적 고통 때문인지 2014년에는 뉴욕에서 아일랜드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을 폭행한 혐의로 6000달러(639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