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으니 제발 살려만 주세요."
4일 오후 서울 역삼동의 한 인형병원. 20대 남성이 옆구리가 터지고 눈이 하얗게 바랜 강아지 인형을 꺼내며 부탁했다. 인형수술 경력 30년의 이수민(54)씨가 유심히 살펴보더니 "피부 이식도 하고 내장과 안구도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위·실·솜 등이 가지런히 놓인 '수술대' 위에 인형을 올리더니 가위로 배를 쭉 갈랐다. 인형 속에 솜을 한가득 채워넣고 봉합한 뒤, 털 빠진 피부에는 비슷한 천을 덧대 꿰맸다. 4시간 걸린 대수술 끝에 인형은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망가진 인형을 고쳐주는 인형병원이 인기다. 찾아오는 손님은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인형을 10년 넘게 보관하고 있는 어른들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6월 국내 최초로 인형수선집에 '병원'이란 이름을 붙인 김갑연 토이테일즈 원장은 "추억이 담긴 인형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며 "40년 넘은 인형을 정성스레 싸와 고쳐달라고 부탁한 중년 여성도 있었다"고 했다.
인형 수술 비용은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봉합 같은 단순 수술은 1만5000원 정도면 되지만, '피부 이식'과 '안면 재건' 등에는 60만원까지 들기도 한다. 수술 시간도 길게는 5일까지 걸린다. 인형이 단종돼 새로 구할 수 없을 때 하는 '인형 복제'는 50만원 선이다.
봉제인형 역사가 긴 서양에서는 생긴 지 100년 넘은 인형병원을 찾기 어렵지 않다. 미국 뉴욕의 '뉴욕 인형병원'은 1900년에 문을 열었고, 포르투갈 리스본에는 1830년 문을 연 것으로 알려진 인형병원이 아직도 운영 중이다.
'토이 테일즈'에 들어오는 수술 의뢰만 한 달 200~300건에 달한다. 병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런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네 살 때 만나 평생을 같이 잔 소중한 우리 꼼이 좀 살려주세요." "21세 된 우리 루비 왼쪽 다리가 떨어져서 수술하고 싶어요. 너무 불안한데 혹시 수술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