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한다'는 말은 다양한 감각을 품고 있다. 어떤 촉감, 혹은 냄새. 순간의 표정이나 풍경. 소리와 빛. 슬프거나 기쁜 감정일 수도 있다. 누군가 '인생 가장 행복한 기억을 얘기해달라'고 물을 때 어떤 감각을 떠올릴까. 그 순간의 디테일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재생할 수 있을까. 게다가 죽은 뒤의 세상, 마지막으로 가져갈 단 하나의 기억을 고르는 거라면.

지난 4일 재개봉한 '원더풀 라이프'는 이제는 일본을 대표하는 명장이 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두 번째 영화, 1999년작이다. 죽은 이들이 처음 도착하는 곳은 오래된 도서관이나 관청 건물처럼 보이는 연옥(煉獄). 직원들은 죽은 이들에게 "당신 인생을 돌아보고, 사흘 내로 가장 소중한 추억을 하나만 골라 달라"고 말한다. 그 추억은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지고, 죽은 이는 그 영상을 보며 추억과 함께 다음 세상으로 간다. 선택하지 못한 자는 남아서 다른 이들의 기억을 돕는다. 영화는 이곳에서 일주일간 벌어지는 이야기, 감정의 흐름과 엇갈림을 담는다.

고레에다 감독은 반년 동안 600여 명을 인터뷰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물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전문 배우와 일반인이 뒤섞여 있고, 그들은 실제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반추한다. 할머니는 좋아했던 오빠 앞에서 빨간 구두를 신고 춤췄던 소녀 시절을, 남자는 전쟁터에서 적군 병사에게 얻어먹은 쌀밥의 향기를 떠올린다.

차창 밖에서 불어오던 바람, 산고 끝에 아기를 낳아 처음 안던 순간….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나설 때, '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였나'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관객 각자의 '원더풀 라이프'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상영시간 108분, 전체 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