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사람들은 점성술이 오래 전에 폐기 처리되었기에 한껏 비웃어도 좋다고 믿었다. 그러나 최근 점성술이 사회 저 깊은 곳에서 탈출하여 300년 전 쫓겨난 대학 문을 다시 두드리고 있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융(C. G. Jung)이 1930년대 어느 강연에서 한 말이다.
관상감 소속의 풍수·사주·점성술도 1910년 조선 왕조의 멸망과 더불어 폐기되었다. 그러나 100년 후인 21세기 초 이들이 대학에서 자리를 꿰차고 있다. 입시생 감소와 인문학 위기로 폐과 수순을 밟는 일부 '특수' 대학(원)들이 그 빈자리를 사주·풍수·관상으로 메우면서이다. "역술인·무당 100만명이 넘어섰다(조선일보·2017년 11월 25일자 B3면)"는 이정구 기자의 분석과 궤를 같이한다. '특수' 대학(원)이 '인력 수급' '학적 권위 부여' '학력 세탁'을 해주기에 가능한 것이다. 역술인으로 전업하거나 역술에 의존하는 이들 모두 불안한 실존들이다. 불안한 사회의 귀태(鬼胎)이다.
융은 말한다. "모든 점성술사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노력과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한 개인의 길흉화복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이러한 본질적 의문은 인류의 시작부터 있어왔고, 사주·관상·풍수 등은 그 대응 상품이었다.
중국과 조선의 지식인들도 사주와 풍수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대했다. 주희(朱熹)와 진덕수(陳德秀)는 풍수와 사주를 '터를 고르는 이론[擇地之說]과 운명을 논하는 이론[論命之說]'으로 정의하여 자신의 학문 세계 속에 끌어들였다. "넓고 넓은 바다 속에 하나의 작은 좁쌀(滄海之一粟)"에 지나지 않은 한 개인의 존재론적 의미를 시간[사주]과 공간[풍수]이란 '탁상' 위에 올려놓고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함이었다. 문제는 한국의 '특수' 대학(원)들을 통해 양산되는 사주·풍수·관상학인들은 스스로 예언자나 무당이 되고자 한다는 점이다. 사주와 풍수를 통해 자신의 문제, 즉 처신의 때[사주]와 장소[풍수]를 고민하기보다는 타인의 길흉화복을 말하려 하고, 심지어 타인의 삶을 디자인하려 든다.
2018년을 '황금개 해'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다. 2018년도 무술년도 하나의 표기이다. 그런데 역술인들은 2018년을 '황금개 해'라고 주술화(呪術化)·상술화한다. '황금 개 해'는 戊戌年에 대한 우리말 오역(誤譯)이다. 무(戊)는 오행상 土(토)를 상징하며, 土는 또 오행상 황색을 상징한다. 술(戌) 또한 오행상 土이며, 짐승으로는 개를 배속시킨다. 따라서 무술년은 우리말로 '누렁개 해'가 된다. 그런데 이것을 역술인들은 금박으로 포장하여 '황금개 해'라고 부른다. 우리는 '2018년'이란 숫자에서는 어떤 비의(秘意)를 읽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戊戌年'에서는 심오한 뜻을 끄집어내려 하는가? 2018년을 '황금개 해'라고 아무리 불러보아도 황금개는 튀어나오지 않는다. 2018년 '황금개 해'를 맞이하여 역술인들은 개들의 충성·용맹·영험을 칭찬하며 그와 같은 해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덕담 차원이라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제쳐두고 '짐승의 덕을 보자'함은 옳지 않다.
한 인간의 길흉화복을 결정짓는 데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그 가운데 결정적인 것이 국운, 즉 국가의 운명이다. 그 까닭에 후한의 지식인 왕충(王充)은 "국가 운명이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國命勝人命)"고 하였다. 어떻게 해야 국운이 좋아지는가? 지도자들이 확연대공(廓然大公: 우주처럼 넓은 공평무사함)할 때이다. 부디 역술인들의 주술화와 상술화를 언론들이 확대재생산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