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외교부 고위직을 역임한 P씨가 '3S 외교관'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외교관 가운데 외국어 실력이 뒷받침 안 되는 사람들은 다자 회의에서 처음에는 침묵(silent) 한다. 그러다가 뭔가를 이해한 것처럼 가끔 미소(smile) 짓는다. 그다음에는 잠을 잔다(sleep)"는 것이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대중(對中) 외교에서 여러 일화를 남긴 한 외교관은 공식 모임에선 의례적인 덕담만 주고받았다. 중국의 특성상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용한 정보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임이 끝난 후 차를 타기 직전이나 단둘이 있는 짧은 순간엔 달라졌다. 유창한 중국어로 목소리를 낮춰 말해 주요 정보를 얻곤 했다. 출중한 언어 구사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외교는 조국을 위해 외국에서 거짓말을 하는 애국적 행위"라고 한다. "정직이 가장 좋은 외교정책"이라는 말도 있다. 어느 경우든 공통되는 것은 외교란 결국 말이 무기라는 것이다. '주재국의 신뢰를 받으면서도 말로써 우리의 입장을 관철해내는 것'이 외교관의 제1 덕목이다. 외교 현장에 45년을 몸담았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영어도 현지어도 안 되면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주재국 국민의 마음을 얻는 외교'를 주문했다. "우리 외교는 힘이나 돈으로 한계가 있지만,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더니 미·중·일·러 대사에 이어 이번 해외 공관장 인사에서도 '캠코더(대선캠프·코드인사·더불어민주당)' 출신을 다수 기용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활동한 인사들 이름이 10여년 만에 다시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외교관으로서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 '대사(大使) 고시'로 불리는 어학시험도 치르지 않았다. 어떻게 주재국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외교를 '예술의 한 형태'라고 정의했다. 외교관들이 국익을 위해 말을 제스처와 미묘하게 섞고, 보디랭귀지와 수사(修辭)를 가미하는 것이 예술과 같다는 것이다. 외교를 예술로 만들려면 국제적인 경험과 식견에 더해,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언어 능력이 따라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도 저도 갖추지 못한 '캠코더 공관장'들로 인해 '3S외교관' 얘기가 다시 나올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