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해 군납 햄버거 패티류 카르텔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한 유성씨앤에프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이 군납비리 카르텔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에선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소시효가 임박해서야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은 공정위 탓만 할뿐 수사의지가 없어 무혐의 처분하는 경우가 늘면서 형사처벌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기관의 엇박자로 인해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기업은 이를 행정소송에 유리한 정황으로 활용하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 법원 “공정위가 받은 진술 신뢰성 있어”...검찰 부실조사 지적도
공정위는 지난해 4월 유성씨앤에프 등 방위사업청에 햄버거 패티류를 납품하는 7개 업체에 대해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공동행위(담합)를 했다며 7개 업체에 모두 66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유성씨앤에프는 13억9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들이 방사청의 적격심사를 받아 낙찰자가 결정되는 시스템에선 업체간 낙찰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어 입찰지역에 따라 낙찰받을 업체와 들러리 업체를 정하는 수법으로 담합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소송에서 “유성씨앤에프는 2008~2012년 불고기패티, 치킨패티 등 입찰에서 입찰지역별 낙찰예정자, 형식적 입찰참가자, 들러리 투찰가격을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유성씨앤에프는 “다른 회사들과 지역을 나누거나 투찰 가격을 논의하지 않았다”며 담합 혐의를 부인했다. 이 회사는 “2010~2012년 입찰에선 많은 사업자가 입찰에 참여해 실질적인 경쟁이 발생했다”며 “특히 2011년과 2012년 입찰에는 최저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투찰했기 때문에 선정된 것이지 담합의 결과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윤성원)은 지난달 21일 “공정위 조사에서 다른 회사 관계자가 지역배분과 공동수급체를 구성하는데 합의하고 들러리 사업자를 선정했다는 취지로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했다”며 “공정거래법상 합의는 명시적 합의뿐 아니라 묵시적 합의까지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공정위 조사에서 2010년 합의가 결렬되자 입찰지역 배분 담합에서 배제됐다는 타사 관계자 진술, 타사 관계자의 업무수첩에 기재된 들러리 사업자 등이 대체로 실제 입찰에 참여한 점을 근거로 삼았다.
검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한 것과 대조적이다. 공정위는 유성씨앤에프가 2008~2012년 담합에 참여했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상 부당공동행위 혐의는 담합행위가 완료된지 5년뒤가 공소시효 완료다. 공정위는 지난해 4월 4일 고발했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4월 20일 완료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결국 같은달 18일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유성씨앤에프는 관계자들이 검찰 조사에서 진술을 번복해 공정위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며 검찰의 무협의 처분서 등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법원은 “검찰 조사에서 사건 관계자가 들러리 참여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지 여부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지만, 이에 대해 재판에서 검찰 조사 당시 참고자료 없이 기억에만 의존해 진술하라고 해 기억이 불분명하다는 취지 진술한 것일 뿐 공정위 진술을 번복한 것은 아니다라고 증언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에서 참고자료를 제시하는 등 수사의지를 보였다면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하지 못했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유성씨앤에프는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난 것을 재판부에 강조했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일부 진술을 번복한 결과로서, 이 사정만으로 담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집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 공정위 늑장처리, 검찰은 공정위 탓
담합이 인정되는데도 이들 업체들이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었던 건 공정위의 늑장 처리와 검찰과 공정위가 협업할 수 없는 현 시스템이 한 몫 했다.
방사청이 군납 담합 입찰 관련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한 건 2012년 5월이다. 공정위는 소시지·돈가스 등 품목을 군에 납품하던 19개 업체가 지난 2006년부터 입찰 담합을 벌여온 사실을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사안이 무거운 업체 6곳은 검찰에 고발했다. 문제는 조사요청이 이뤄진 지 5년만인 2017년 4월에야 공정위 처분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검찰은 한 달도 안되는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수사할 수 없던 업체 일부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 무혐의 처분했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형사처벌하려면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재판에 넘길 수 있다. 검찰이 먼저 위법사실을 공정위에 통보하며 고발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고발이 이뤄져야 기소가 가능한 점은 변함없다. 이른바 전속고발권 문제다.
공정위와 검찰의 엇박자로 기업들이 형사책임을 제대로 져오지 않았다는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글로벌 자동차 해상운송 업체들의 담합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2006~2012년 8개 해상운송사가 거래 상대방 및 시장을 나눠먹은 혐의를 확인하고도 지난해 9월 2개 업체만 기소했다. 공정위 고발이 공소시효 만료를 보름여 앞둔 8월 18일에야 이뤄진데다, 이미 3곳은 자진신고면제(리니언시)로 고발대상을 피해갔기 때문이다. 검찰은 담당 인력 전원을 투입하고서도 고발된 5개 업체 중 3곳은 시간부족으로 공소권없음 처분했다.
지난해 미스터피자 갑질 사건에선 검찰이 공정위 고발 없이 수사에 나서 공정위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검찰이 공정위 고발 뒤 수사에 나섰던 기존의 수동적인 자세에서 공정위 고발 없이도 수사에 착수한 뒤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자세를 적극적으로 바꾼 것이다.
공정위는 현행법상 검찰이 고발을 요청할 경우 거부할 수 없어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늑장고발’ 논란에 해명해야 했다. 당시 공정위는 신고사항 중 가맹본부의 광고비 집행내역 미공개의 경우 2016년에야 공개 의무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검찰 조사 결과 미스터피자는 2008~2015년 가맹점 홍보 명목으로 점주들로부터 거둬들인 5억7000여만원을 자사 임직원 다과비 등으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 공정위, 검찰 협업 대안 요구에 이해관계 달라 진전 없어
법조계에선 제도적 보완을 포함해 공정거래 사건을 다루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의 사건조사는 현장조사, 금융거래정보 제출요구 등 일부 강제력을 갖지만 기본적으로 행정조사의 일종이다. 내부고발이라 할 수 있는 리니언시에 기대게 되는 배경이다. 사실관계 판단이 법정에서 뒤집히며 조사능력 부족 논란을 부른 사례도 있다. 초동조사에서 신속하게 사실관계를 확정한 뒤 처분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우선 거론되는 건 전속고발권 폐지·축소다. 공정위는 지난해부터 가맹사업법·대규모유통업법·대리점법 등 유통3법을 시작으로 전속고발제 폐지에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공정거래법상 전속고발제 역시 올해 상반기 중 검토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다만 이는 일부 대기업 사건 등에 있어서 공정위의 미온적 처분이 잦다는 지적에 따른 반성일 뿐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조사권은 오히려 강화될 조짐이다. 이에 공정위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처벌 실효성을 높일 방안으로 유관기관 합동수사단 운용 등이 거론된다.
주가조작 근절을 위해 2013년 첫 출범한 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의 경우 검찰, 금융위원회, 국세청,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예금보험공사 등 유관기관이 힘을 모았다. 강제수사가 필요한 경우 금융당국에서 검찰을 거치는 절차를 간소화한 패스트트랙 운용으로 3년간 1300명 가까운 증권범죄사범을 적발해 처분했다.
대형로펌의 공정거래전문 변호사는 “공정위가 조사하는 동안 공소시효가 임박해도 검찰은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수사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며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검찰과 협업을 하는 방안에 대해 법조계에선 논의가 있었지만 관계 기관 이해 관계때문에 진전이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공정위가 리니언시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검찰은 공소시효가 임박해서 공정위가 고발해도 최선을 다해 조사하고 기소까지했지만, 최근 검찰을 보면 수사 의지가 떨어진 것은 아닌지, 공정위 탓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